창덕궁 안내       목록가기  

 
창덕궁 가는 길

사적 제 122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안내전화 02-762-8262

입장시간 :
여름철(3월~10월)에는 09시15분~17시15분 사이 30분 간격
겨울철(11월~2월)에는 09시00분~16시00분 사이 1시간 간격
안내원을 따라 함께 이동하게 되며, 개별관람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관람소요시간 : 1시간 20분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관람요금 : 25세이상 어른 2200원,  7세~24세 청소년 1100원

교통안내 :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걸어서 5분 쯤, 또는 1호선 종로3가역에서 10분 쯤.
시내버스 2, 6, 8, 20, 84, 153, 205, 543번

   동궐 조감도
 

 

  창덕궁은 원래 이궁(離宮)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로 줄곧 정궁(正宮) 구실을 하였다. 어쨌든 창덕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성 500년 다섯 궁궐 가운데 그런대로 옛 규모와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한 껏 눈길을 끌 게 한다.

 호암 문일평은 <호암전집> 제 3권 <고건물 순례>에서 창덕궁의 특징을 손꼽아,

   첫째로 조선왕조 초기의 건물인 돈화문을 유지하고 있고,
   둘째로 후원과 같은 서울 제일의 심오하고 아름다운 대원지(大苑池)를 지녔으며,
   셋째로 궁궐 규모가 굉장히 화려하고,
   넷째로 각 시대의 신구 건물이 들어 있으며,
   다섯째로 궁궐 제도가 그대로 구체적으로 남아 있으니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창덕궁(사적122호)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이었다.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 방면에 있다 해서 '동궐'이라고도 했다. 금천교가 세워지고(1411), 돈화문이 건립되는가 하면(1412), 조선 제9대 성 종 때부터는 여러 임금들이 여기서 지내 본궁 역할을 하는 궁궐이 됐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은 불에 타고 만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이에 화가 난 백성들이 궁궐을 방화한 것이다.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이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 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 등 많은 문화재가 곳 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 진 것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곳이다.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종 이후에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낮은 야산과 골짜기에 원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손을 댄 우리 나라의 으뜸가는 정원이다.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불로문, 애련정, 연경당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정자와 샘들이 곳곳에 있다. 특히 가을날 단풍 들 때와 낙엽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 

 
창덕궁의 역사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太宗 5년)에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된 궁궐이다. 세종(世宗) 때 집현전과 장서각 등을 세웠고, 1459년 세조(世祖)가 옮겨오면서 규모를 15만여평까지 넓혔다. 1592년에는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버렸는데, 1606년(宣祖 39년)에 복구하기 시작하여 1610년(光海君 2년)에 끝마쳤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화재와 정변이 있어서, 1623년 인조반정으로 궁궐일부가 소실되었고, 1803년에는 인정전이 전소되어 그 다음 해에 다시 지었으며, 1917년에는 대조전과 희정당을 비롯한 여러 내전(內殿)이 불에 타는 등 피해가 컸다.

그러나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건축의 명맥을 이어온 유일한 궁이며, 광해군 이후 고종까지 13대에 걸쳐 258년간 본궁으로 쓰였던 곳으로서, 경복궁보다도 더욱 궁궐다운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모든 넓이는 135,212평이고 궁궐 건물 13동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으며, 나머지는 복원공사중이다.

창덕궁 후원(後苑)은, 자연과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한국전통 조경 기법이 잘 보존된 곳이다. 현재 28동의 정자와 누각이 남아 있다. 1976년까지는 자유롭게 모든 곳을 볼 수 있었으나 관광객들에 의한 훼손이 심해져서 그 이후로는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후원은 '비원(秘苑)'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실제 조선시대에는 그런 이름은 전혀 쓰이지 않았고, 일제시기 이후 창덕궁과 창경궁이 일본인들의 놀이터와 공원으로 전락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속어로 쓰인 듯 하다. 일부에서는 비원이라는 말이 이미 널리 쓰이고 있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드니 계속 쓰자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서, 반드시 제 이름을 되찾아 주어야 하겠다.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현재 사적 제1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1997년 12월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문화재청 발행, <文化財大觀> 史蹟篇(改訂版, 下) 에서 옮김

  창덕궁은 태종 4년 10월부터 시작하여 태종 5년(1405) 10월까지 1년간의 공사 끝에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궁명(宮名)은 창덕(昌德)이며 정전(正殿)은 인정전(仁政殿)이다. 태종 11년에 진선문과 금천교를 짓고, 태종 12년(1412)에 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세웠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인정전을 다시 짓고 궁내 각 전각의 이름을 새로 정하였다. 조계청(朝啓廳)은 선정전(宣政殿), 후동별실(後東別室)은 소덕전(昭德殿), 후서별실(後西別室)은 보경당(寶慶堂), 정전(正殿)은 양의전(兩儀殿), 東침실은 여일전(麗日殿), 西침실은 정월전(淨月殿), 루(樓)는 징광루(澄光樓)라 하였다.

  세조 9년(1463) 인접(隣接)한 민가를 헐어내고 후원을 확장하였다. 

  창덕궁은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전부 소실되었다. 

  왕궁의 복구공사는 선조 40년(1607)에 시작하여 광해군 2년(1610)에 거의 마무리했다. 

  조선초기에는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왕이 경복궁에서 정사를 보았으나 임란 이후에는 경복궁이 복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창덕궁이 정궁 노릇을 했다. 1623년 3월 인조반정이 일어나서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그 복구공사는 인조 25년(1647)에야 완료되었다.

  효종 7년(1656)에는 만수전(萬壽殿), 춘휘당(春輝堂), 천경전(千慶殿)을 건립하였는데, 만수전과 천경전이 숙종 13년(1687) 화재로 소실되어 버렸다. 숙종 21년(1694) 춘휘당을 선원전(璿源殿)이라 개칭하고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였다. 숙종 30년(1704) 12월에 대보단을 조성하고 정조 원년(1776) 9월 후원에 규장각(주합루)를 건립하였다. 

  정조 6년(1782)에는 인정전 뜰에 품위석(品位石)을 설치하였다. 순조 3년(1803) 12월에 인정전이 화재로 소실되자 다음해에 즉시 복구한 바가 있고, 순조 24년(1824) 8월에도 불이 나서 경복전(景福殿)이 모두 불탔다.

  1912년 일제는 창덕궁과 후원을 일반 백성에게 관람시키기 시작하였다. 1917년에는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에 불이 나서 희정당 등 19동의 건물이 다 탔다. 

  1920년 이들 침전을 복구하였는데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가 대조전을 복구하고, 강녕전을 헐어다가 희정당을 복구하는 등 경복궁의 많은 침전을 헐어 창덕궁 부속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1921년 후원 훈국 북영지(訓局北營址)에 선원전을 새로 건립하고 어진을 옮겨 봉안하였다.

  1995년에는 일제가 변형시킨 인정전 회랑(廻廊)을 헐고 새로 건립하였으며, 1997년에는 진선문을 복원하였다. 창덕궁에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건물은 인정전(국보 제 225호), 인정문(보물 제 813호), 선정전(보물 제 814호), 희정당(보물 제 815호), 대조전(보물 제 816호), 선원전(보물 제 817호)이다.

  창덕궁 침전 동쪽에는 성정각과 승화루가 있고, 낙선재 지역은 후궁들이 거처하던 곳이라 단청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들이 있다. 뒤뜰의 화계나 꽃담, 괴석 등이 대단히 아름답다. 창덕궁 후원을 '비원(秘苑)'이라고도 하는데, 실록에는 금원(禁苑), 후원(後苑), 북원(北苑) 등 표현이 많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는 상림(上林)이라 표현되기도 했다. 비원이란 이름은 광무(光武) 8년(1904) 7월 15일 기록에서부터 보인다.

  후원의 면적은 약 9만여평에 이른다. 

  북악(北岳)의 동쪽 봉우리인 응봉(鷹峰)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용같은 산줄기 중간에 후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능허정(凌虛亭)이 있는 언덕(표고 98m)이 제일 높은 지역이다. 임진왜란 이후 20여년간을 폐허로 있다가 광해군에 의하여 복구되었다.

  후원에는 17개 동의 정자(亭子)가 있는데 연산군때 건물로 농산정(籠山亭)이 있고, 인조때 건물로는 청의정, 소요정, 태극정, 취규정, 희우정(喜雨亭), 존덕정이 있다. 숙종때 건물로는 영화당, 사정기비각, 애련정(愛蓮亭), 능허정, 청심정(淸心亭), 취한정(翠寒亭), 괘궁정(掛弓亭), 몽답정(夢踏亭)이 있으며, 정조때는 주합루, 서향각, 부용정이 있고, 순조때는 의두각, 기오헌, 연경당, 농수정이 있으며, 조선말 일제 초의 건물로 승재정, 관람정이 있다.

  연못으로는 부용지, 애련지, 반월지(半月池), 관람정 앞 연못, 몽답지, 빙옥지(氷玉池), 연경당 앞 방지(方池, 원래 魚水堂의 방지임)가 있다. 식물은 160여종에 297,000여주가 서 있으며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주목, 음나무, 회화나무, 산뽕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된 다래나무와 천연기념물 제 251호로 지정된 향나무도 있다.

  괴석(怪石)은 크기가 사람의 키보다 모두 작은데, 정자 옆이나 연못가, 집안 담장 옆이나 후원의 화계에 배치되어 있다. 

  옥류천소요정에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던 곡수구(曲水溝)도 조성되어 있다. 후원의 수목은 계절 변화에 민감하게 변한다. 봄이면 신록이 움트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타며, 겨울에는 손시린 나목(裸木)과 설경이 아름답다.

  후원은 제왕이 수학(修學)하고 수신(修身)하면서 치도(治道)를 닦고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어진 정치를 하기 위한 휴식처이기도 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세계적인 명원(名苑)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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