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원 전        목록가기  

 

선원전(璿源殿)

   선원전의 내력

   <한경지략>에 ,'선원전이 인정전 서쪽에 있는데 동족문을 만녕문(萬寧門)이라 한다.숙종, 영조, 정조의 진영(眞影 :영정)을 모시고 달마다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생신날에 임금께서 친히 차례 제사를 드린다.

 

<동궐도의 선원전>

  종묘는 외조(外朝) 선원전은 내조(內祖)를 상징한다.'고 하였듯이 위패를 모시고 신도를 섬기는 종묘의 제례와는 달리 궁궐 안의 선원전은 영정을 모셔 놓고 다과나 음식으로 차례를 드림으로써 인도로 선왕을 섬기던 곳이었다. 이렇듯 종묘는 궁궐밖에 있는데 반하여 선원전은 궁궐 안에 있는 사당이었다.

   효종 7년 (1656) 가을에 경희궁의 경화당을 이건하여 춘휘전이라 하였다가 숙종 21년 (1695)에 어진을 봉안한 뒤부터는 선원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뒤 영조30년 (1754)에 중수하였고 순조 2년과 순조 16년(1816)에 보수 공사가 있었고 고종광무 4년 (1900)에는 경복궁의 선원전 증설과 함께 창덕궁 선원전의 일실(一室)증건 공사가 있었다.

  어진을 추가로 봉안하기 위한 한칸 증설이지만 이에 따라 진설청(陳設廳)과 내재실(內齋室)도 이건하고 선원전의 단청과 도배도 새로 하는 등 5월 초에 착수하여 12월 23일 완료되는 적지 않은 공역이 었다.

  1917년 창덕궁의 큰 화재로 1920년대에 창덕궁 건물을 중건할 시기인 1921년 에는 창덕궁 후원의 서북쪽에 예전 북일영터였던 외진 곳에 새로 선원전이 건립되었다.

<옛대보단터에 지은 신선원전>

 

 

  왕실의 조상을 모시는 곳은 국가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므로 국가의 기세를 꺾고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일제의 의도에 의하여 감추어진 위치에 건립되는 것이다.

   신 선원전이 건립되자 숙종 이래로 사용되어 온 선원전은 구 선원전이라 부르게 되었고, 창덕궁의유물 보관 창고로 쓰이다가 현재는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선원전의 구조

    현재는 선원전만이 남아 있으나 건물의 네 모퉁이에는 진설청과 내재당의 부속채가 있었고 동남쪽에는 국왕의 재실인 10칸의 양지당이 있었다.

  남쪽 행각에는 연경문(衍慶門)이 있고 서쪽에는 승안문(承安門)과 지난날의 일을 되새긴다는 의미의 건물명인 억석루(憶昔樓)가 연속되어 있다.

   행각 남쪽에는 영의당(永依堂), 선원전 담장 밖 북서쪽에는 숙경재(肅敬齋)가 있고 동쪽문은 만안문(萬安門), 서쪽 문은 만녕문(萬寗門), 북쪽에는 경숙문(敬肅門)과 영휘문(永輝門)이라 하여 조상을 공경함으로써 영원히 안녕을 누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건물은 정면 9칸, 측면4칸의 이익공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세 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 기둥을 빠짐없이 세우고 내부는 전체를 통칸으로 하여 우물 마루로 깔았다.

 

  기단의 앞면과 뒷면에는 3,5,7,칸 부분에 우석(隅石)이 없이 단순한 장대석으로 계단을 설치하였다.

  실제의 출입구는 정면 가운데 칸 1개소임에도 불구하고 앞뒷면으로 6개소에 설치한 계단은 조상의 혼백과 교통하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바깥쪽의 기둥 사이는 장대석 또는 전돌로 고막이를 하고 그 위로 하인방을 설치하고, 전면 가운데 칸에만 궁판을 둔 격자살 분합문4짝을 , 정면과 양쪽면 그리고 뒷면의 3,5,7,칸에는 격자살창을 설치하였다.

   건물 내부의 천장에서 앞뒤 툇간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고 나머지는 소란반자를 설치하여 봉황문양으로 치장하였다.

  고주와 고주의 중간에 대들보 밑으로 본래의 기둥보다는 단면치수가 적은, 별도의 네모기둥을 보아지(기둥머리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채)를 사용하여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춘휘전을 선원전으로 개수하면서 초상화를 모실 감실(龕室)을 설치하기 위해 추가된 기둥인 것이다.

  지붕은 양성마루에 취두, 용두, 토수, 잡상으로 장식하였고 건물의 동쪽에 있는 화계가 옛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은 효종 7년에 이건한 이래로 여러차례의중수공사를 하면서 부분적인 변화는 있겠지만, 광해군 12년 (1620)에 창건된 경희궁의 경화당을 이전한 것이므로 창덕궁에 세워진 시기는 1656년이지만 주요 골격은 1620년대의 것이다.

  한편 선원전에 모셨던 초상화는 6.25 동란중 부산으로 피난하였다가 화재로 소멸되어 신, 구 선원전 모두 주인 없는 건물이 되어 버렸다.

 

 

 

 

 

            <현재 복원공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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