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조 전        목록가기    

 

                        대 조 전

 

대조전 (大造殿)

  조선왕조 500년 사직의 종말을 고한 경술합방(한일합방)이라는 올가미를 쓰게 한 어전회의가열렸던 대조전의 동익각인 흥복헌은 어전회의 주인공인 순종 황제가 1926년 4월 25일 상오 6시 15분에 세상을 떠난 방이기도 하다.

  그외에도 성종, 인조, 효종 세 임금께서 여기서 승하하셨는데, 성종은 재위 25년만인 38세, 인조는 27년 만인 55세, 효종은 재위 10년 만인 41세 때의 일이었다.
  그 후 순조의 효현왕후께서 1809년 8월에 대조전에서 익종을 분만하셨는가 하면 세상을 떠난 곳도 이곳이었다.

     

무량갓의 구조적인 특징은 용마루에 해당하는 부분을 곡와 (曲瓦)라 하여 특별히 제작한 구운 기와로 잇고 합각 마루와 추녀 마루는 양성 바르기를 하며 합각벽의 상부는 합각 마루와 함께 둥글게 처리하고 지붕속의 용마루 도리를 2줄로 평행하게 구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량갓을 구성하는 이유는 이것은 대조전의 집채가 대지를 상징하는 곤전(坤殿)인 까닭에 하늘 높이 종마루가 솟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름의 의미

  희정당 북쪽에 자리한 대조전은 내전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중궁전당으로 곧 왕후의 침전이다.(보물 816호)

   국가의 기틀을 이어가는 세자를 큰그릇으로 키워야만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안녕을 누릴 수 있다는 뜻에서 '대조전' 이라명칭하였다 한다. 

중궁이란 의미가 표현하는 것처럼 왕실의 대를 이루는 곳이므로 구중 궁궐이란 표현 그대로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인 것이다.  

  구중 궁궐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대조전은 왕후, 곧 곤전의 침전이라 외명부인 왕족이나 문무고관의 부인 혹은 딸일지라도 왕후께서 들라는 내지표신이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임금께서 총애하는 내명부인 비빈이나 나인 궁녀일지라도 왕후를 모시는 곤전 나인 이외에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오직남편인 임금만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대조전의 내력

   대조전도 창건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다.
  광해군 초년에 중건 하였는데, 15년뒤 인조반정 때 다시 불에 타 버려 인조 25년 (1647)에 다시 중건하였으나 , 순조 33년 (1833) 10월에 희정당 등 내전 일원이 온통화재를 만나 소실된 것을 다음해에 3차로 중건한다.

   그러나 순조때 건물도 일제시대인 1917년 11월 10일 오후 5시에 대조전과 희정당, 경훈각을 비롯한 내전이 모두 불타면서 내전에 소장된 서적과 귀중품들도 소실되고 불은 3시간이 지난 8시에야 꺼졌다.

고종과 왕비는 급히 연경당으로 피신하였다가 인정전 동행각으로 이어하고 침소는 성정각에 임시로 마련하였다가 뒤에 낙선재로 이어한다.

  피재된 건물의 중수를위하여 경복궁의 전각을 철거하여 재료를 조달키로 하고, 건축의 기본은 한식을 위주로 하면서 서양식도 도입 하기로 하여 연내에 착수하여 1919년에 준공할 계획이 설정된다.

 공사가 진행되던 중 고종의 승하와 장례식, 3.1운동 등의 사건이 발생한 탓으로 예정보다 1년 늦은 1920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대조전 앞의 희정당은 경복궁의강녕전을 이건하고 강녕전뒤에 있던 교태전으로 대조전을 중건하게 되면서 내전의 모습은 화재가 나기 전의 모습과는 크게 변한다.

  특히 대조전의 일곽은 교태전의모습과 원래 대조전 일곽의 모습이 혼합된 특색있는 구성이 된다.

  교태전도 강녕전과 같이 소실되고 중건된 건물이므로 지금대조전의주요 구조는 1888년대의 것이 된다,

 

 

   대조전의 구조

  정면 9칸의 운공이 있는 이익공 겹처마 팔작 지붕이고 지붕 위의 용마루가 없는 무량갓(無樑閣) 건물이다.

  정면 9간, 측면 4간짜리 건물 대조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기역자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대조전의 왕의 침실 >

 

  본채 동쪽으로는 흥복헌 8간 반과 9간 반의 청향각, 서쪽으로는 융경헌 6간이 날개채로 딸려 있어서 언뜻 보면 복잡하게 보인다.

  거기에 동쪽으로 동행각 8간반과 9간 반의 청향각, 서쪽으로 10간, 그리고 남쪽으로 긴 남행각이 앞마당을 두르고 있어서 복잡한 느낌을 준다.

 

<대조전 왕비의 침실 >

 

  정면9간과, 측면 4간 중에 정면의 7간과 측면의 2간만 방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툇간으로 꾸며져서 다락이나 복도로 쓰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가운데에 6간 대청을 마련하고 그 좌우로 4간 짜리 온돌방을 꾸몄는데 이것이 바로 임금과 왕비의 침실이었다.

  대청은 서양식 쪽 널마루로응접실을 꾸며서 중국풍의 의자를 놓았으며 왕비의 침실에는 침대를 놓았다.

 

<대조전 응접실 >

   

   창호의 종류도 다양하여 대청의 앞뒷면에는 세 살 분합문을 설치하였고, 기타 외부로는 머름 중방 위에 아(亞)자 분합문과 고창을 달았으며 대청과 방사이에는 불발기문을 설치 하였다.

  대청 동쪽에 있는 중앙윗벽에는 봉황 그림을 장식하고 서쪽 벽에는 군학 그림을 벽화처럼 장식하였다.이그림들은 오일영, 김은호, 이상범, 노수현 화백의 합작그림으로 각각 폭 5.3미터, 높이 1.8미터 되는 대폭 그림이다.
 

  서쪽의 백학도 : 백학은 예로부터 신선의 경지가 아니면 날지않고 소나무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죽실이 아니면 먹지 않기에 새중의 군왕으로 왕을 예표하며, 목단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며, 특히 적목단, 흑목단, 백목단은 최고의 영화를 나타내고 있으며, 불노초는 영구불멸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바위는 대자연의 요동하지 않는 육중한 기교, 물은 만백성을 뜻하는 것으로서 궁전 장식화로서의 백학도의 주제는 배경의 노송들과 더불어 송령학수로 흔히 표현되는 장생불사의 염원을 상징. 
 

 동쪽의 봉황도 : 동해의 바다를 배경으로 날아앉는 봉황 각 10마리가 당시의 왕자와 왕비격의 고종의 자손을 예표하여 왕실에 앉는 듯한 내용으로 배경의 오동나무는 형제간의 우애를 예표한 것이며, 목단꽃은 부귀와 영화를 나타냈고, 대나무는 한결같은 충성을 나타내며, 파도는 시련과 고난, 바위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대자연의 요동하지 않는 육중한 기교, 물은 만백성을 뜻하는 것이며, 붉게 떠오르는 해는 군왕을 상징하여 높게 떠서 넓게 비춰주기를 기원한 작품으로 궁전장식화로서 길경을 뜻하는 내용. 

 

 

대청의 천장은 대들보 위로 소란반자를 하였고 온돌방은 대청보다 천장을 낮게 하여 종이반자를 하였다.

  교창 안쪽에는 별도로 유리창을 설치하고, 커튼박스와 전등으로 치장하였다.앞면의 툇간 평주 밖으로는 쪽마루를 통간으로 깔고 그 끝에 아(亞)자 헌란으로 된 나지막한 난간을 달아서 조화를 자아냈다.

   앞면 평주의 짜임새는 머름 창방 위로 사분합문을 달고 문인방, 교창 그리고 창방을 모기둥 윗몸에 짜돌렸다.

  또한 지붕에는 용두, 잡상,토수를 장식하였다. 

   대조전 뒤 동쪽으로 함원전이 연결되는 것과 1칸 대문이 3칸 대문으로 변한 것은 교태전의 모습이고,

   대조전 전면으로 난간이 있는 툇마루가 설치되는 것은 추가 된 것이며,

   대조전 정면 중앙의 월대는 교태전에서는 없었던 대조전 본래의 것이다.

 

 

대조전 앞뜰에 들어서면 지붕 용마루가 다른 전각의 건물들과는 다른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다른 건물들의 용마루에는 암키와를 깔아 몇 겹으로 쌓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수키와가 한줄로 이어졌는데, 유독 대조전만은 밋밋하게 되어 있다.

  궁궐마다 중궁전은 무량갓으로 만들고 있는데 대조전과 창경궁의 통명전이 현존하는 것이고, 경복궁의 교태전과 경희궁의 회상전도 무량갓 건물이었다.

  음양설에 의해 궁궐을 조성하여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재앙을 막고 , 영구히 안녕을 누리려는 의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중도리를 겹으로 쓴다는 것은 음이 되는 것이며 바깥 기둥은 각주를 사용하고 내부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는 것은 모난 땅과 둥근 하늘을 의미한다.

  이속에 사람이 들면 천지인(天地人)의 삼재가 합일하여 하늘 나라의 이상을 이땅에 구현하겠다는의지와 하늘의 이상이 땅에서 이룩되리라는 믿음에서 였다.

 이처럼 지붕 하나하나까지 동양사상, 즉 태극도설에 따라 지어졌다.

 다른 설에 의하면 용은 임금님을 상징하고 대조전은 임금님과 왕비의 침실도 되니 용위에 용을 두지 않기 위해서라기도 한다.

 

화계를 갖춘 뒤란

  대조전 뒤뜰이야말로 창덕궁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금원의 금원답게 지금도 그윽한 정취가 감돈다.

  완만한 언덕의 지세를 따라 아름답게 둘린 담장, 그 울안에 장대석 세 벌대씩 쌓아 올린 4단의 긴화계, 그 화계에 소나무, 진달래를 심고 그 사이사이로 화초가 파릇파릇한데 괴석이 적당하게 박혀 있는 풍경은 조선왕조 특유의 뒤란 조경이다. 

화계 제일위층의 등성이를 따라 둘린 담장에는 추양문과 천장문이 열려 있다.

  꽃무늬 전돌로 쌓아서 꾸민 아치 모양의 홍예문 위턱에는 나는 학의 모습이 조각되어있고,

  굴뚝은 몸체에 학과 용무늬의 전돌을 탑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그 꼭대기에 목조 건물의 지붕처럼 기와를 얹은 모습등 화계와 담장, 문, 굴뚝으로 어우러진 조화는 이루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아름답고 그윽한 운치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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