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 각      목록가기         

 

 

  성정각 (誠正閣)

    이름의 의미

  성정이란 말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대학(大學)>이라는 유교 경전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기를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는 단계를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명명덕어천하(明明德於天下)로 말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성의란 뜻을 순수하게 집중하는 것이요.
  정심이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왕이나 왕세자가 이런 자기 훈련을 하던 곳이다. 왕이 학자들과 책을 공부하며 정책을 토론하는 것, 곧 서연(書筵)을 열던 곳으로 자주 쓰였다. 문 이름도 영현문(迎賢門) - 현인을 맞이하는 문이다.

 

그러나 현재 안내문이나 안내판에는 모두 내의원이라 쓰여 있다. 이곳을 이렇게 소개 하는 것은 순종이 이 일대에 살던 일제시기에는 내의원으로 쓰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해본다.

  성정각은 문을 꼭 닫아걸고 일반인 출입금지를 시켜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발돋음을 하거나 , 동쪽으로 나 있는 문으로 허리를 버들가지 휘듯 재주를 부려야 볼 수 있다.

 

 내의원이 된 성정각

  '동궐도'와 '동궐도형'에 그려진 성정각의 그림과 현존하는 건물과 는 모습이 부합된다. 그런데 정조 이후의 중수 기록이 없으며, 성정각 현판이 정조 어필이라는 기록과 성정각 동쪽의 중희당을  정조 6년에 세우는 등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 건물은 정조연간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조 임금은 재위 5년 (1781)에 일찍이 숙종께서 지은 <성정각 경계십잠(誠正閣 警戒十箴)>이라는 기문을 조윤형에게  정서하게 하여, 친필로 된 '성정각'이라는 현판과 함께 성정각에 걸어 놓고 몸소 참찬관을 불러 글을 강론할 때면 이곳에서 강론하곤 하였다한다.

 

건물의 편액 가운데는 "조화어약(調和御藥)"과 "보호성궁(保護聖躬)"이 있으며 [한경지락]에서는 "화재어약(和劑御藥)"과 보호성궁의 글씨는 원해진이 쓴 것"이라고 하였다.

  내의원은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던 곳으로 인정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동궐도'에서는 "약방(藥房)"으로 기록하고 있고 또 "내국(內局)"이라고도 하였다.

 

 내의원은 고종 32년(1895)에 폐지되고 전의사(典醫司)로 개칭되었으므로 그 뒤에 성정각을 내의원 용도로 사용한 것 같다.

  1917년의 화재로 임시 침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므로 1920년대의 중건 때에 내의원으로 바뀐 것 같다.

   성정각은 따지고 보면 순조 임금이 왕세자였을 때 글공부를 독려 받던 전각이었다. 또 이언저리 가까이에는 서적을 소장하던 서고인 흠문각도 있었다.

 

    성정각의 구조

  성정각은 정면 6간에 측면이 2간으로 동쪽칸에는 빈칸이 돌출되어 그위의 두칸과 함께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누마루의 아랫부분은 개방되어 있다.

  그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누마루의 아랫부분은 개방되어 있다. 그 누마루 서쪽으로 반 간짜리 마루방이 있고 , 그옆으로 두칸방이고 다음이 대청이며 이어서 앞뒤로 방 두칸씩이 있다.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은 반간짜리 마루방의 앞퇴에 설치되어 있다.

 

앞쪽으로 어간과 협간의 앞퇴3간이 개방되어 있고 , 기역자형 마루의 삼면에는 툇마루와 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세 살 분합문으로 벽을 구성하였다.

  누마루 정면에 '보춘정(報春亭)' 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동쪽에는 '희우루(喜雨樓)'
 라고 쓴 현판을 걸었는데, 지금은남쪽 정면에 '희우정(喜雨亭)'이라는 현판이 옮겨져 있다.

 

<동궐도>를 보면 예전에는 성정각 앞쪽으로 널찌간 월대가 있었고 누마루 밑에 벽과 창문이 설치되었으며, 누마루의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담장이 세워지고 그 중앙부에 일각대문인 보춘문이 나 있었다. 또한 북으로는 누마루의 한칸 옆에서 북쪽으로 판장이 설치되어 마당을 셋으로 구분지었다.

  그리하여 일각문인 보춘문 외에도 존현문(尊賢門), 금서문(琴書門)이 따로 나 있었다. 지금은 성정각 문간채 5간이 남아 있어서 서쪽에서 두 번째 간에 존현문이 남아 있다.

  지금은 이문간채 동쪽에 담장과 연결되어 있는 행각이 있으나 , <동궐도>에는 그것이 나타나 있지 않다. 

  마당이 세분되는 상태로 보아 이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의 신분과 직책에 따라 통로를 구분하여 동궁(東宮)이 한적하게 면학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곳의 판장들은 필요에 따라 이동시킬 수 있는 조립식 판장으로 그려진 특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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