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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궐도에서의 궐내각사>

               

궐내각사

 선정전과  성정각앞 낙선재로 가는 길은 아주 넓고 훤하다.

 미로같은 희정당과 대조전을 보고 나온 후라 그런지 넓은 잔디밭이 낯설다. 또한 아기자기한 낙선재를 갔다가 후원을 가게되면 다시 이길을 걷게 되는데 손톱만큼만이 

라도 궁에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넓은 공터가 예사로 보이지는 않는다.

  왕을 가까이서 모실 필요 때문에 궁궐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관원들의 관서를 통틀어 궐내각사(闕內各司)라고 한다. 일제는 궁궐을 파괴하고 왜곡시키는 가운데서도 특히 궐내각사는 철저히 파괴하였다.

 

대청(臺廳)과 승정원(承政院)

  원래 궁궐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을 당시에는 이곳도 인정전의 서쪽과 남쪽 일대와 함께 많은 관서가 들어차 있던 궐내각사 구역의 연장이다. 빈청에서 선정전을 향해 들어가면서 왼편으로는 인정전 회랑에 잇대어서 대청(臺廳)과 승정원(承政院)이 있었다.

  대청이란 한 관서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언관(言官)들이 대기하면서 협의를 하던 회의실이라고 할 수 있다. 언관이란 사헌부와 사관원, 그리고 홍문관의 중하급 관원들을 가리킨다.

  사헌부는 시정의 잘잘못을 따지고 관원들의 잘잘못을 조사하여 처벌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들의 억울한 일들을 풀어주며, 관리들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을 맡은 관서이며, 사간원은 왕에게 바른말을 올리고 관원들의 주장에 대해서 논박하는 일을 맡은 관서이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청사는 궁궐 바깥에 있지만 담당 언관들은 궁궐에 들어와 근무해야 하였으니 그들의 근무처가 곧 대청이다.

  조선 중기에는 언관들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고위 관원들도 그들을 무시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왕까지도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찌 보면 두렵고 어찌 보면 귀찮은 존재였다.

 언관들은 밤이나 낮이나 대청에 모여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면서 기세가 대단하였다. 이러한 꼴이 보기 싫었던지 숙종은 온들로 되어 있던 대청을 마루로 바꾸어 버리라는 명을 내렸다는 일화가 있다.

  승정원은 왕명을 출납하는 일을 맡은 승지들의 관서이다. 국정의 모든 일이 문서로 왕에게 보고되고 왕의 명령도 모두 문서로 신료들에게 하달되게 되어 있는데 그 문서를 들이고 내는 일을 맡았다는 것은 국가의 정보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승지들은 밤이고 낮이고 왕의 측근에서 대기하여야 하였으니 승정원이 왕이 계시는 내전 지척에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일이다.

 

   사옹원(司饔院), 내반원(內班院)

  빈청에서 선정전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편, 지금 잔디 밭으로 되어 있는 공간에는 사옹원(司饔院), 내반원(內班院)과 같은 관서들이 있었다. 사옹원은 왕이 잡수시는 식품을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어 바치는 일을 맡았던 관서이다.

  왕의음식 자체만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까지도 사옹원에서 담당하였다. 처음에는 그릇들은 사서 쓰거나 여러 관서에 배당하여 조달 하였던 듯하나, 나중에는 사옹원에서 직접 그릇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광주(廣州) 분원(分院)이다. 분원에서 만든 그릇은 왕이 쓰시는 것인 만큼 당대 최고의품질을 자랑하는 것이다. 요즈음에도 분원 자기 하면 알아주는 것이 그런 연유다.

  내반원은 궁궐에서 일하는 내시들의 관서로서 내시부(內侍府)라고도 한다. 흔히 사극이나 코미디를 보면 내시는 '없이 사는 놈', 수염도 없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간사스런 행동을 하는 자들이요. 왕이난 왕실 가족만이 아니라 일반 관원들의 호령에도 발발떠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상과 큰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당사자들께는 대단히 큰 실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내시를 오늘날의 관직으로 비견하자면 청와대 직원들과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에서 온갖 업무를 처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선시대에 내시들은 대단히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어쩌면 단일 직종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궁궐에서 일하는 내시 자리의 수효는 <경국대전>단계에서는 140명이라고 되어 있으나 , 정조 때 편찬된 <대전통편>에 가서는 수효가 일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왕의 뜻에 따라 정하도록 변동이 된다.

   내시의근무 형식은 비교적 장기간 궁궐에 머물면서 근무하는 방식 - 장번(長番)과 하루 또는 길어야 며칠 정도를 기한으로 교대 하면서 궁궐을 출입하며 근무하는 형식 - 출입번(出入番)으로 나뉘는데 출입번보다는 장번이 좀더 책임이 무겁고 따라서 지위도 안정적이요 높은 편이다.

   대전 - 왕을 시중드는내시는 장번은 정해진 수가 없고 , 출입번이 42명이며, 왕비전에는 출입번이 12명이고, 세자 빈궁에는 출입번이 8명이다. 그밖에 궁궐 각처에서 근무하는 하급내시 - 소환 (小宦)들은 90명이다. 출입번만해도 총 154명에 달한다.

  내시는 정2품 상선(尙膳)에서부터 종9품 상원(尙苑)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위계 질서를 이루고 있다. 일정 기간 근무하면 이직급이 올라가며, 또 근무 일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이들이 하는 일은 직급에 따라 왕이나 왕실 가족이 드나드는 문을 관리하는 것에서부터 각왕실의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 왕의 최측근에서 그뜻을 바깥으로 전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롭다.

  <경국대전>에는 '궁궐 안의 음식물을 감독하고 왕명을 전달하고 , 궐문을 지키고, 청소하는 임무를 담당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내시들을 관리하는 관서가 내반원으로 그것은왕이 계시는 내전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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