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        목록가기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헌종 13)에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은 집이다. 그 뒤로,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고종황제의 외동딸이자 마지막 공주였던 덕혜옹주, 일본의 왕녀로 두 나라를 조국으로 섬겨야했던 영친왕 부인 이방자 여사 등 비운의 주인공들이 한많은 삶을 이곳에서 마쳤다.

낙선재 옆으로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보통은 이들을 모두 통틀어 낙선재라고 한다. 원래는 창경궁 영역에 속하는 건물이었다. 낙선재의 대문은 연경당 대문과 같은 이름인 장락문(長樂門)이다

     행랑채에서 내다본 모습

    벽돌담      낙선재 안채       화계
 

 

  경훈각 뒤에 있는 화계(花階)이다. 언덕을 층층이 깎아 돌로 가장자리를 마무리하고 단마다 꽃을 심은, 글자 그대로 '꽃계단'이다. 한국 전통 정원에는 화계가 많다. 한국은 산과 언덕이 많은데다가,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보통은 산을 등지고 집을 짓게 된다. 따라서 집 뒤엔 비탈진 곳이 으레 있기 마련이다. 이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화계를 쓴다. 창덕궁에는 경훈각과 연경당, 낙선재에 화계가 있다.

 
 

  낙선재 뒤뜰에 있는 보름달 모양 문 - 만월문(滿月門)과 여섯모 누각이다. 위 사진은 만월문을 승화루(承華樓) 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반대 방향에서 만월문을 보면, 동그라미 한 가운데로 멀리 백악(白岳, 지금 북악산) 봉우리가 보인다. 만월문 뒤 누각은 이름이 '상량정(上凉亭)'이라고 씌어있으나, '동궐도형(東闕圖形)'에 보면 평원루(平遠樓)라고 되어있다. 일제시기에 이름이 바뀐 듯 하다. - <우리 궁궐 이야기> 에서 옮김.

  고려말 문인 이규보 선생은 樓와 亭을 구분하여 정의하였는데, 樓는 '이층으로 된 집[重屋]'으로서 누마루 밑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거나 마루가 지면으로부터 높이 솟아있는 것이고, 반면에 亭은 마루를 높인 것이 아니라 원래 높은 곳 위에 세운 집이기에, 공간이 개방되어있고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곳이라 하였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상량정'이 아니라 원래 이름인 '평원루'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낙선재 (樂善齋)

  <궁궐지>의 창경궁 편을 보면,

  '낙선재는 17간 반짜리  집으로 2간 5량에 기둥의 길이가 8척 3치이고 양통은 2간으로 8척식이며, 도리통은 6간으로 8척씩이고 앞퇴는 4간씩이다.

 낙선재에는 청나라의 엽지선이 쓴 '낙선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딸린 집채인 남행각 12간에는 장락문이 나 있고 서행각 15간과 외행각 15간에는 중화문(中華門)이 나 있으며, 그 동쪽으로는 소금마문(小金馬門)이 나있다.' 고 기록되어 있다.  

  낙선재의 정문 장락문은 일각문으로 행랑채보다 지붕이 솟아올랐다.

  이런 문을 '솟을대문'이라 부른다. 여염집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호칭한다.  

문 좌우로 행랑채가 있다. [궁궐지]의 남행각 12칸에 해당한다.

  무사석 세 켜로 듬직하게 기초하고, 위로 사괴석 세 켜를 또 쌓았다.

  그 위로부터는 벽돌인데 운두가 두꺼운 벽돌을 쌓아 올리다가 갑자기 그것의 반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을 얇은 벽돌을 쌓아 마감하였다.

  운현궁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런 변화 있는 담벼락 축조법이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장락문'이라고 쓴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이다.>

   행랑채 바깥벽을 이렇게 축조하면,
1.불에 쉽게 연소되지 않는다.
2.장마 때 빗물이 벽체를 적셔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3.도적이나 적이 공격할 때 쉽게 뚫고 침입하지 못한다. 는 세가지 큰 이점이 있다.

  골목마당에서 디딤돌 하나 딛고 문에 올라서게 되는데, 널빤 문짝이 달린 문지방이 돌이고, 중앙에 홈이 파져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격이 이만한 집에는 주인이나 객이 외바퀴 수레인 초헌을 타고 드나들기도 한다. 문지방의 홈은 외바퀴가 지나갈 자리이다.

  이런 방식은 고구려 성문에서도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고구려 성문자리를 평양에서 발굴하였다. 거대한 문지방이 제자리에 남아 있었고, 그 문지방엔 수레가 지나갈 수 잇게 바퀴 지나갈 자리에 홈을 팠다.그로 인해 고구려 수레이 축의 폭이 얼마인가를 알게도 되었지만 편의를 도모한 지혜를 볼 수 있었다.

 

장락문을 들어서면 돌기단위에 세운 낙선재 본채는 정면 6간, 측면 2간의 단층 팔작지붕 초익공 양식의 건물이다.

  서쪽 옆간 앞쪽으로 한칸쯤을 돌출시켜 높직하게 누마루를 꾸몄기 때문에 장락문을 들어서면 그 누마루가 정면으로 보인다.

  누마루 밑을 보면 소용돌이치는 구름 문양과 마주치게 된다. 나무는 삭아 가고 있지만 구름 문양은 아직 뚜렸하다.

누마루는 허공에 떠 있는 다락같은 마루이니, 그 밑에 구름이 있다는 것은 그 위가 천상의 세계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기둥은 모두 네모 기둥으로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고, 그 틈으로 도리를 올려 놓았다.  창방과 도리 받침 사이에는 소로를 기웠고, 창방머리는 초각(草刻)하였다.   처마는 겹처마로 알맞은 물매 곡선에 안허리의 굽음새도 알맞게 잡혀 있다.

 누마루 뒤에는 방1간이 있고, 동쪽 2간이 대청이며. 다음 2간이 방이다. 누마루의 높은 초석과 그 뒤쪽의 기단부에 설치된 빙렬무늬분합문의 아(亞)자살 , 방의 세 살문과 장식창호 등 그 하나하나의 구성이 한결같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낙선재는 'ㄱ'자 형의 조촐한 집이다. 여염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창살의 무늬가 여럿 채택되어 위치에 따라 변화가 있고 아름답다고 손꼽을 수 있다.

  건너방에서 작은 마루인 내루로 올라가는 문은 둥근 만월문이다.

  건물 내부에 이런 만월형의 보름달 문이 만들어지는 일은 쉽지 않다.

  대청에 앉아 맞은편을 보면 장락문이있는 행각이 보인다.

 

 그 중에 살대무늬가 아름다운 분합문이 눈에 뜨인다.

   한국인은 방.대청에 앉아 내다보는 자리에 아름다움이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성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안 마당은 반듯하다. 동편에 샛담이 있는데 꽃담의 무늬가 의미 심장하다.

  뜻을 판독한다면 [여기는 사귀를 물리친 청정의 세계이다.그 속에서 님과 함께 무궁무진하게 살고 싶다]이다.
  다니며 무늬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도 큰 재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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