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하루 일곽      목록가기      

 

승화루(承華樓) 일곽

  일제시기에 우리 왕실을 탄압하고자 창덕궁 경찰서로 사용하기도 한 승화루(承華樓)는 일군의 건물은 정조 연간(1777 - 1800)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정문에서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꺾인 부분 정면에 육각정과 행각, 누각이 중첩 연결되고

    난간과 담장의 장식이 오밀조밀하게 베풀어져 있어 창덕궁을 드나들면 반드시 눈길을 끄는 건물군이 있다.

  길가에서 건물을 향하여 볼 때에 중앙에 있는 육각정의 명칭이 삼삼와(三三窩)이고, 왼쪽에 복도각 6칸이 있는데 끝의 한칸은  'ㄱ' 자로 꺾이어 정면을 향하여 어색하게 돌출되어 있다.

  이 복도각의 명칭이 칠분서(七分序)이고 육각정의 오른쪽 담장뒤에 있는 건물이 2층의 승화루이며 승화루와 삼삼와를 연결하는 복도 4칸이 건물뒤로 늘어서 있다.

  낙선재의 상량정 서쪽 담장에 나 있는 보름달 모양의 만월문으로 승화루를 드나들 수 있는 것을 보면 승화루와 그 일군의 건물들이 마치 낙선재의 후원에 속하는 것 같이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원래 승화루는 창경궁 안의 중희당과 연결되었던 집이다.<궁궐지> 창경궁 편에도 승화루를 소주합루, 그밑의  층을 의신각이라 적고 있다.

 

   승화루의 원래모습

  중희당은 정조 6년(1782)에 건립된 기록이 보이고 순조 이후의 화재 때에도 소실된 기록이 없으나 '동궐도형'에는 "건물이 없다.라고 기재가 되어 있어 1910년 이전에 다른 건물의 중건에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의신각'이라고 불리던 승화루 아래층이 지금은 온통 개방되어 있는데, <동궐도>에 보면 이곳에 방을 꾸민 것으로 그려져 있고, 현재의 돌기둥 아랫부분에 인방이 끼이는 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철거된 것으로 판단된다.

  <궁궐지>에서는 승화루 일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승화루는 반간통 3간의 도합 4간 반짜리 이익공 집으로 기둥의 길이가 8척 5치에 양통은 12척 5치이며 도리통은 3간 8척씩이다. 뒤편의 4간 복도 서쪽에 이이와 , 즉 육우정이있고, 그 북쪽에 6간짜리 칠분정이 있다.

  그 동쪽으로는 저방실(貯芳室)이 4간인데 또 그 동쪽에 사잇담이 있고, 그 곳에 일각문인 여화문(麗華門)이나 있다. 동행각 5간에는 중앙문이 나있고 남행각이 6간, 외행각이 12간반 인데, 그 서쪽 사잇담에도 일각문이 있고  그북쪽에 관광청이 있다.'

 

   승화루 일곽의 짜임새

  이들 집채는 바깥 둘레에 쪽마루를 놓고 난간을 설치하여 서로 출입을 자유롭게 한 점이 특색이며, 또한 난간이 매우 아름답다. 3간 정면의 다락집 유형인 승화루의 다락 아래 기둥은 돌기둥으로 기둥 밖으로 그위 다락의 쪽마루가 둘러져 있다.

  돌기둥에 의지해서 초각한 초공이 그쪽마루를 버텨 주고 있는데 그초공은 마치 선반을 받치는 학의 다리와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위층은 사면에 세 살 분합문을 달았고 동쪽에 다락으로 오르는 층계를 설치하였으며 4면을 두른 툇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난간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정의 난간과 유사하지만 난간의 소동자가 서양풍의 호리병 모양으로 가늘고 기다랗게 처리된 것이 특이하다.  또한 난간이 교란형이면서 동그라미와 빗살을 번갈아 엇매낀 모습이 아주 이색적이다.

  내부의 천장은 굴도리 높이에 소란반자를 설치하여 보상꽃 무늬를 단청하였고 각 간의 반자 중앙부에는 한단 높게 8각형을 틀고 거기에 봉황을 그렸다.

 

    승화루의 쓰임새

  상량정 서쪽에 있는 승화루를 [창경궁 궁궐지]에서는 창덕궁후원의 주합루에 비견하여 소주합루(소주합루)라 하고, 아래층을 의신각(儀宸閣)이라 하였다.

  연경당의 정문과 낙선재의정문과 낙선재의 정문이 다같이 장락문(長樂門)인 점과 주변의 누각을 주합루와 소주합루 라고 한 것에서 창덕궁의 주합루와 창경궁의 낙선재와 승화루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주합(宙合)이란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합루의 아래층인 규장각인 서고로 사용되고, 위층은 어진, 어제, 어필, 보책들을 보관하기도 하였고, 선왕의 작품과 동서고금의 책들을 수장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선왕의 작품과 동서고금의 책들을 수장하여 시공이 합치되는 건물이라는 이름이 이해가 되나 소주합루가 같은 용도로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아래층의 이름이 의신각으로  '제도의 궁궐'이라는 뜻이므로 각종 의계와 법규책을 보관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따름이다.

  순조대에도 소주합루라 불리던 건물이 승화루로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헌종대에 낙선재를 건립한 뒤로 짐작된다.

 

    삼삼와 

   건물 이름이 독특하게 삼삼와로 부르는 연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부용정 남쪽에 있던 개유와(皆有窩)는 중국 서적을 수장하였던 건물이며, 그의미가'모든 것이 있는 움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삼와는 '여섯모 움집'이라는 뜻이며 승화루의 의신각과 함께 귀한 서적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육각정인 삼삼와는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기둥 하부로 2단의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초석과 고막이를 돌려놓고 그 위의 아래층 벽에는 전돌로 귀갑문 장식을 하였다.

   바깥쪽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르고 상중하의 삼단으로 구획된 살난간을 두르고 이 난간이 칠분서의 난간과 계단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육각형의 기둥을 사용한 초익고 겹처마로 지붕의 정상부에는 나지막한 절병통을 설치하고 있다. 현재는 위층의 창호가 세 살 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나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에는 아자살 분합문이 설치되었다. 그러므로 이것도 후대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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