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용 지          목록가기               

 

 

 부용지

  부용정 북쪽에 널따란 장방형 연못이 있다.

  이 방지(方池)의 크기는 세로 34.5미터, 가로 29.4미터나 되는데 가장자리는 장대석들을 바른층 쌓기로 하여 마감하였다.

또 못 가운데에는 장대석으로 바른층 쌓기를 한 둥근 섬이 하나 있다. 연못이 네모나고 섬이 둥근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고 하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못은 장대석으로 바른층 쌓기를 한 둥근 섬이 하나씩 있다. 이런 모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이루어져 왔다.

 [삼국사기]의 백제의 무왕 때 기록을 보면 "궁궐 남쪽에 못을 파고 , 20여리 밖으로 물을 끌어들이고 네 가장자리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 방장 선산을 모방하여 섬을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여기서 네 가장자리라는 것은 바로 못이 네모난 방지임을 말해주고 방장 선산은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산다는 방장, 봉래, 영주의 세 선산 가운데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도교 사상이  일찍부터 정원 조영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게 해 준다.

 곧 부용지의 조영에는 음양론, 도가 사상등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이러한 오래된 조형 원리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있다.

 

여기서 네 가장자리라는 것은 바로 못이 네모난 방지임을 말해주고 방장 선산은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산다는 방장, 봉래, 영주의 세 선산 가운데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도교 사상이  일찍부터 정원 조영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게 해 준다.

 곧 부용지의 조영에는 음양론, 도가 사상 등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이러한 오래된 조형 원리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있다.

 

연못의 가득 찬 물은 동쪽 연못 가장자리에 뚫어 놓은 수구로 간다. 그리고 부용정 쪽은 장대석으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는데 한 돌에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부용지의 잉어조각, 이무기 , 배기구

  연못 석축을 따라 부용정을 향해 가다보면 석축 모퉁이에 물고기 한 마리가 물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비록 작은 물고기 조각에 불과하지만 이 잉어 한 마리가 이 일대 공간의 성격을 얼마나 극적으로 암시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남아로 태어 났으면 출세욕과 명예욕을 가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그 욕망의 표현방법이 지금과 달랐다. 직설이 아니라 은근한 비유로 그 뜻을 표현하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옛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겼으면서도 장원급제하기 위해 면학에 힘쓴는 선비를 잉어에 비유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것은 용문(龍門)에 얽힌 어변성룡(漁變成龍)설화에서 연유한 것이다.

  용문은 중국 황하의 상류 산서성 하진현과 섬서성 한성현 사이에 있는 급류가 흐르는 협곡이름이다. 그런데 잉어가 이 용문의 급류를 오르면 즉시 용으로 화한다는 전설이 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강에 사는 뭇 잉어들이 상류의 용문으로 모여드는데, 물살이 너무 빨라 보통의 잉어들은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중 힘센 잉어가 있어 이협곡을 뛰어 넘어 용으로 변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되는 것을 입신출세나 명성이 높은 것에 비유하였다. <후한서(後漢書)>이응전에도 이와 같은 비유를 볼 수 있으며,  조선의 이규보가 정득공이 그린 잉어 그림에 제(題 )한  내용에서도 볼 수 있다.

도화랑(桃花浪:복숭아꽃이 필 때 시냇물이 불어나서 위로 흐르는 물결)이 하늘에 닿을 듯 불어날 때면 용문에 들어가 꼬리를 감추고 훌쩍 날아볼까.

  이는 때가 되면 벼슬을 해볼까 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옛날에 용문을 과거 시험장의 정문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나, 근래에 와서 전도 유망한 대학을 지칭하여 등용문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변성룡의 설화 내용은 민화에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위를 뛰어오르고 있는 잉어를 그리되,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 있고, 입언저리에는 긴수염과 이빨이 날카롭게 그려져 있다.

  완전한 용의 모습이 아니라 몸은 물고기 형상으로 머리는 용의 형상으로 묘사함으로써 잉어가 변하여 용이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용지 일곽에는 잉어의 등용문설화와 관련된 상징물들이 도처에 있다. 예의 잉어가 새겨진 축대의 건너편 돌계단 위의 문이름을 어수문이라고 한 것도 그냥 지나칠 것이 못되지만 , 문설주에 새겨 놓은 용조각도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궁궐에 있는 문설주에 용을 장식한 예가 없는 것을 보면 어수문의 용조각이 특별히 등용설화와 관련되어 있음이 증명된다.

  어수문 안쪽 주합루(宙合樓)에 오르는 계단 소맷돌에는 유운(流雲) , 십자운(十字雲)등 구름문양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주합루가 운기(雲氣) 감도는 구름위의 누각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기 비각 북쪽에 골짜기가 있고 거기에서 맑은 물이 흐러내려 연당으로 들어간다.

  물이 주입되는 자리에 이무기 형상을 조각한 주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둥근 눈이 어리석게 생긴 이무기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물이 그 벌린 입에서 나온다.

 

연당 가장자리를 무사석으로 말쑥하게 쌓아 정리해서 주변은 정숙한 중에 지상으로 굴뚝처럼 생긴 작은 석조물이 보인다.

  연당의 고였던 물이 넘어서 흘러 나갈 때 무넘기에서 공기의 저항을 받을까 봐 배기구로 설치한 매우 과학적인 시설물이다.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

  부용정큰 못 서쪽 물가에 서 있는 이 비각은 숙종 때 세운 것이다.

 

 

<사정기 비각>

본래 세종 6년 (1424)영순군과 조산군으로 하여금 지금의 주합루 근처에서 우물을 찾도록 하였는데 마침 두 짝씩 찾아 내어 이것들을 마니(摩尼 ), 파리(坡璃), 유리(琉理), 옥정(玉井)이라 이름을 지었다.

  뒷날 숙종 16년 (1690)에 이를 기념하여 옛 술정각 자리에다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사정기 비각이다.

 

 

부영지와 부용정  부용지(芙蓉池)는 가로세로가 30미터에 달하는 네모꼴의 큰 연못이다. 동궐도를 보면, 옛날에는 이곳에 배를 띄워 놀았음을 알 수 있다. 그 한 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전통적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것이다. 전통건축에는 이런 숨은 뜻들이 많다. 음양(陰陽), 오행(五行 - 木金水火土), 사신(四神 - 靑龍, 白虎, 朱雀, 玄武), 십이지(十二支 -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등이 그것이다,

 

 부용지: 부용지의 물은 땅에서 솟아 오르므로 이 큰 연못이 마르지 않고 가득차 있다. 세종 6년에 이곳에서 우물 네 개를 찾아내어 마니(摩尼). 파리(璃 ). 유리(琉璃). 옥정(玉井)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일이 있다. 숙종 6년에 이 일대를 잘 다듬으면서 옛얘기를 새긴 비각을 건립했는데 , 이것이 부용지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사정기 비각(四井記碑刻)이다.

 

 돌 괴물 입을 통해 흘러드는 물은 비 왔을 때 잠간 뿐이고, 사실은 대부분 땅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한다.

 

 자대석 안쪽 돌에는 물고기가 새겨져 있고, 부용정 맞은 편에 있는 주합루 정문 이름은 어수문(어수문)이다. 왕은 물이고 신하는물고기이니,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부용정: 연못에 담그고 있는 두 다리는 흡사 바지 소매를 걷고, 발을 담근 모습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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