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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합루와 어수문

  부용지 북쪽 높직한 언덕 위에 2층 다락집인 주합루가 우뚝 서있다.

  주합루는 그 아래 남쪽으로 비탈진 바닥에 설치한 지대석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는데 계단 앞턱에 정문격인 어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어수문(漁水門)

길이 12척 1.4치, 폭 7척 4치의 기둥에 우진각 기와지붕을 얹은 일주문인 어수문은 일종의 삼문형식이지만 가운데의 어문과좌우 양쪽의 협문이 각각 따로 떨어져 있다.

   2층 다락집인 주합루의 정문으로서는 몹시 작은 편이지만 지나치리만큼 화려한 장식이 베풀어져서 다른 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기에 기둥과 기둥 사이만은 넓게 잡혀 있으나, 재목마다 작게 마름되어서 창방, 서까래, 부연등이 아주 작고 따라서 공포도 작으며 기와도 그에 맞추어 적당히 줄여졌다.

 

 

  살창문을 단좌우의 협문도 조그마한데, 그런 중에 문인방을 활 모양으로 구부정하게 해서 드나들기 편하게 되어 있다.

  널판으로 이은 지붕도 적당히 둥글려서 제법 맵시가 난다. 맞배집 양편에 팔(八)자 모양으로 두꺼운 널판을 붙인 박풍도 지붕의 곡선에 맞추어 할 모양으로 휘어서 막아 놓았다.

  이렇듯 어수문은 그 짜임새가 치밀하고 건실하여 능숙한 건축가에 의하여 설계되고 지어진 것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어수문은 후원 안의 대 연회장인 주합루의 정문답게높은 품격을 갖춘, 참으로 아름다운 공예품이 아닐 수 없다.

  어수문 앞턱 돌계단 양쪽 가장자리의 소맺돌 바깥쪽에는 구름무늬를 새겼는데, 이것은 이돌계단을 오르면 구름 위, 즉 하늘로 오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수문(漁水門)이라는 이름도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물고기와 물에 비유한 듯으로 영민한 물고기가 맑고 깊은 물을 만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하여 지은 것이다. 

 

'동궐도'에서 살펴보면 어수문 좌우의 작은 협문옆으로 넝쿨을 말아올리는 시설을 하여 여기에 푸른 식물들이 뒤덭여 있어, 마치 푸른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하다.

  이런 시설물 곧 취병(翠屛)은 '동궐도'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이곳 어수문 양쪽에서와는 달리 그 길이가 짧고 전각의 안뜰에 설치되었다.

  어수문 양쪽으로 둘러친 긴 취병은 어수문 위족 주합루의 공간과 부용정, 부용지의 아래 공간을 커다란 2개의 공간으로 갈라 놓는 역할을 한다.

 

이 주합루를 처음 세운 것은 정조 원년인 1777년으로 아래 층에는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이 있고 그 위층은 열람실로서 사방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누대가 있다.

  정문인 어수문을 들어서서 여러 단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노라면 먼저 주합루 팔작지붕이 그리고 다음으로 누의 공포, 창방, 기둥들이 눈앞에 다가오다가 1층 규장각 제일 중앙어칸(御間)을 마주하게 된다.

 

누의 건축은 장대석 바른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밖으로 방주(方柱)를 세우고, 안쪽으로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에 익공 2개를  놓아 이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부연을 둔 겹처마로 팔작 기와지붕을 덮었는데 용마루는 양쪽에 회를 발라 양성을 하였고, 용마루 끝에는 취두를 얹고 추녀 마루에 잡상들을 얹어 한껏 치장을 하였다.

 

집의 크기는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1층과 2층 모두 기둥 밖으로 닭다리 모양의 난간인 계자각(鷄子脚)을 세우고 여기에 난간 두겁대를 얹은 계자 난간을 둘렀다.

 

1층은 장방형의 평면 안쪽에 세운 기둥을 따라  띠살 창호들을 달아 정면 3칸, 측면의 큰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둘레는 1칸 폭으로 개방하였다.

  이 큰 공간은 중앙만이 우물마루 방이고, 양쪽 1칸씩은 온돌방으로 하였다.2층의 누에서는 중앙 3칸, 측면 2칸의 기둥 아랫부분은 우물마루에 붙여 하방(下枋)을 돌림으로써 바깥 앞쪽과 안쪽을 구분하였다.

이런 수법은 경복궁 경회루에서 바닥 자체에 높낮이 차를 두고 좌석의 높고 낮음을 표시하고자 한 수법과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규장각의 정실(正室)

  임금의 연회장으로 경복궁의 경회루가 있듯이 , 주합루는 창덕궁의 연회장이다. 그러나 주합루는 숙종 때 왕실 족보 등을 보관하는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 때 이르러 탕평책을 추진하던 무렵 규모도 늘리고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여 규장각의 정실로 꾸며졌다.

즉 규장각은 정조 당시 국내외 도서들을 모아 왕립 도서관의 역할은 물론, 인재를 등용해 국가정책 연구와 왕의 비서실 역할까지를 담당했던 기구로 발전시킨 것이다.

  주합루는 단지 휴식기능만 갖춘 것이 아니라 국정업무수행을 위한 생산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정조 임금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세칭 사검서(四檢書)로 알려진 초정 박제가 , 아정 이덕무, 혜풍 유득공, 서이수등이 드나들며, 옛것을 배우는 '수학호고(修學好古)'와 나를 다시 돌아보며 실리를 추구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일으킴으로써 조선왕조의 문예부흥에 크게 이바지한 무대였다.

  그러나 일제시기에 이곳은 이토 히로부미가 연회장으로 활용하는 등 왜곡과 수난을 겪기도 했다.

  지금의 주합루 2층 처마에 걸려 있는 현판의 '주합루'라는 글씨는 정조의 어필이며, 사검서는 언제나 창덕궁의 북문이며 후원의 서문 격이 되는 영숙문을 통해서 이 곳 규장각을 출입하였다.

 

 

■ 주합루(宙合樓)와 어수문(魚水門)

  이 일대를 창덕궁 후원의 백미(白眉)라고 한다. 창덕궁을 소개하는 책이나 인터넷사이트에 빠지지 않고 이 곳 사진이 등장한다. 

  알록달록 단풍든 모습이 단청의 색깔과도 같이 느껴진다. 뒤에 큰 건물이 주합루이고, 그 앞에 작은 정문이 어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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