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오헌. 의두각            목록가기        

 

 

 기오헌과 의두각

  1800년 정조가 갑자기 돌아가자, 순조는 겨우 11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에 외척세력은 왕권을 완전히 압도하고, 이른바 세도정치를 시작하였다.

  순조 초에 안동김씨인 김조순(金祖淳)이 왕비의 아버지로서 정치를 전담하다시피 하였는데, 그의 일족들 또한 많은 고위관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순조에게 임금이라는 자리는 고통스러움일 뿐이었을 것이다. 순조는 1827년에는 아들 효명세자가 대신 국사를 처리하도록 대리청정을 시키고는 후원 연경당에 가끔씩 들어가 쉬곤 했다.

  효명세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여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럴 때 전범이 되는 것은 당연히 그 할아버지 정조였을 것이다.그래서 효명세자는 규장각의 뒷편 기슭에 독서처로서 이 기오헌과 의두각을 지은 것이리라.

  기오헌의 기오는 오만한 그 무엇에 기댄다는 뜻이고, 의두는 북두성에 의지 한다는 뜻이니 효명세자의 의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효명세자는 할아버지 정조를 생각하며 이름을 지을 당시의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대리청정을 한지 3년 만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

 

 

■ 기오헌(寄傲軒)

  기오헌은 순조(純祖, 23대)의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 뒷날 헌종 때 翼宗 칭호를 받음)가 지은 집이며, 그가 가끔씩 와서 독서를 즐기던 곳이다. 

 장대석을 한벌로 두른 낮은 기단위에 네모 뿔대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민도리 집으로 홑처마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단청을 하지 않은 극히 소박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3칸의 방형 평면으로 왼쪽 1칸폭이 온돌방이고, 중앙 2칸폭이 우물마루의 대청이고, 오른쪽 1칸폭이 누마루이다

 

   

  금마문(金馬門)

영화당 동편 넓은 마당을 지나 후원 안쪽에 들어서면 왼쪽에 금마문이 나오는데, 이 문의 안쪽 산 언덕에 기오헌(寄傲軒)과 의두각(倚斗閣)이 자리잡고 있다.

"궁궐지"의 기록을 보면 이 불로문 앞에 연못이 하나 있었고, 그 이름을 불로지라고 하였다고 항다.

불로문(不老門)

금마문 옆 담장 중간에 담장을 끊어 두 개의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이 위에 한 장의 통돌을 깎아 세운 불로문이 있다.

  의두각(倚斗閣)

의두각은 기오헌 보다도 더 작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한 사람이 누울 공간도 없을 정도로 작아 보인다.

  두 곳 모두 그늘진데다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서 겨울에는 눈이 늦도록 놓지 않고 쌓여 있다.

  이 곳 역시 효명세자가 즐겨 찾았던 곳이다.

기오헌처럼 민도리집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백골집(白骨宅)으로 정면 2칸, 측면1칸의 극히 작은 평면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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