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류 천(玉流川)      목록가기       

 

 후원 3.4.5 공간 안내도

 

이 일대는 창덕궁에서는 돈화문 다음으로 '속세'와 가까운 지역이 아닐까 한다. 바로 뒤에는 성균관대학교의 시멘트 건물들이 솟아 있고, 동쪽 담장 너머로는 주택가가 있어서 개짖는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옥류천은 인조 14년(1636년)에 만들었다. 소요정(당시 이름은 歎逝亭), 태극정(당시 雲影亭), 청의정 등을 세우고, 그 앞 바위에 둥근 홈을 파고 물길을 돌려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玉流川'이라는 인조의 붓글씨를 새겨넣었다. 1636년은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해다. 여진(女眞)족의 후금(後金)이 나라이름을 청(淸)이라 바꾸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인조는 남한산성까지 피난갔다가 결국 항복을 결심하고는 삼전도(三田渡)의 청군 진영에 나아가, 피가나도록 땅에 머리를 찧으며 청태종에게 절을 했다.

 
1690년에는 돌 윗부분에 숙종의 詩를 새겨 넣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 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
看是白虹起(간시백홍기) 飜成萬壑雷(번성만학뢰)
"폭포수 물길이 300척에 이르고, 아득히 먼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만 골짜기에 우레가 가득하다."

가끔 어느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돌난간을 두른 어정(御井) 사진이 나오는데, 그 돌난간은 이미 없앴다. 어정은 옥류천 바로 뒤에 있는 약수터이다.

 

 
소요정(逍遙亭)

  왼쪽에 있는 둥근 바위 주변을 옥류천(玉流川)이라고 한다. 

  오른쪽 앞의 정자가 소요정(逍遙亭)이고, 그 뒤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태극정(太極亭)이 있다.  

  왼쪽 뒤편에는 초가지붕을 한 청의정이 있다. 

  옥류천은 인조 14년(1636년)에 만들었으며 바위에 둥근 홈을 파고 물길을 돌려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玉流川'이라는 인조의 붓글씨를 새겨넣었다

 
청의정(淸의亭)-태극정에서 바라본 청의정의 모습.

  궁궐 안에서 초가 지붕을 한 오직 하나 뿐인 특이한 정자이다. 

  이 청의정에 이르는 길은, 옥류천 쪽에서는 두 장의 판석을 놓아 만든 소박한 돌다리로 건너 오고, 어정 쪽에서는 정자와 논 주위의 좁은 길을 따라 정자에 이른다.

  장대석 한벌대로 기단을  쌓아 정자를 않혔다.

청의정(淸의亭) 천정(天井)

  천정의 꾸밈새는 극히 아기 자기하여 공예적이고, 또 단청을 하여 화사한데, 지붕만은 초가로 소박하게 꾸며 극히 대조적이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임금님은 이 정자 앞쪽에 만든 논에 손수 모를 내어 벼를 심고, 또 그 수확으로 얻은 볏짚으로 이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하여 농사의 막중함을 행동으로써, 백성들에게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청의정과 태극정(太極亭)

  맨 앞 초가 지붕을 한 정자는 청의정이고, 그 뒤가 태극정, 제일 뒤에 긴 듯한 건물이 농산정(籠山亭)인데, 정자들이 모두 아담한 크기다.

  청의정과 함께 인조 14년(1636)에 세운 태극정은 처음에는 운영정(雲影亭)이라 했다.

  겹 처마에 네모 지붕을 하고 있는 아주 조그만 정자다

  가장 뒤에 있는 농산정은 대청과 온돌방, 부엌을 고루 갖추고 있는, 조그만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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