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후세에 추앙(推仰)받는 청백리(淸白吏)     목록가기     

 

 

  "청백리(淸白吏)"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방촌 황희(방村 黃喜)정승과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정승이다.

  황희 정승은 세종 때 24년간이나 정승을 지내고 그 중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숱한 치적을 올려 조선조의 4대명상(四代名相)으로 손 꼽히는 인물이다. 일찌기 태종 때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자 이를 반대했다가 귕야살이를 했을 정도로 소신이 굳으면서도 워낙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청백리에 녹선되는 등, 90수를 누리면서 숱한 일화를 낳았던 인물이다.

  맹고불 정승도 조선조의 대표적인 명상(名相)이요 청백리로서,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내면서 황희정승과 함께 조정과 제야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맹고불은 유명한 최영장군의 손녀사위로서, 고향 온양의 오봉산 밑에 살면서 나이 10여세 때 일찌기 어머니가 돌아가자 7일 동안 음식을 전폐하고 3년간 죽을 먹으면서 묘 앞에서 상(喪)을 치러, 고향에 효자정문이 세워지기까지 했다.

 

 

 

 

 

淸白吏(청백리):
  
청백리(淸白吏)는 그의 인품(人品), 경력(經歷), 치적(治績) 등이 능히 모든 관리(官吏)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人物)이어야만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된다. 청백리(淸白吏)로 뽑히면 품계(品階)가 오르고 그 자손(子孫)은 음덕(蔭德)으로 벼슬할 수 있는 특전(特典)이 있다. 따라서 본인은 물론 일문(一門)의 큰 영예로 여기었다.
  청백리(淸白吏)는 의정부(議政府), 육조(六曹), 한성부(漢城府)의 이품이상(二品以上)의 관원(官員)과 대사헌(大司憲), 대사간(大司諫) 등이 후보자(候補者)를 엄격(嚴格)한 심사(審査)를 거쳐 王의 재가(裁可)를 얻어 녹선(錄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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