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관리등용과 문벌제도(門閥制度)란?       목록가기     

 

 

 관리(官吏) 등용문(登龍門)에는 삼도(三道)가 있었다.

  옛날에 벼슬길에 오르는 길은 첫째는 과거(科擧: 小.大.武.雜科), 둘째는 문음(門蔭: 蔭補), 세째는 천거(薦擧:遺逸)의 세 길이 있었다.

  과거(科擧)란  과목(科目)에 따라 선비를 거용(擧用)한다는  뜻으로 시험의 종류를 의미하는 말인데, 이 시험의 종류에는 소과(小科). 대과(大科: 文科). 무과(무과). 잡과(雜科)의 네  종류가 있다.

  생원(生員). 진사과(進士科)를 소과(小科)라고 하며, 또는 사마시(司馬試). 감시(監試)라고도 하였다. 생원. 진사과의 합격자는 합격증명서인 백패(白牌: 흰 종이에 썼음)를 주고,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문과(文科)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하급관리에 등용될 수 있는 자격도 주어졌으므로 사류(士類)로서의 사회적인 지위를 공인받은 셈이다. 

  반드시 소과(小科)를 거쳐야만 응시할 수 있는 문과(文科:大科))는  문관(文官)의 등용자격시험으로,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등룡문(登龍門)을 거쳐야 한다. 문과 합격자는 홍패(紅牌)를 주고, 관직을 내리는 등 가장 우대를 하였다.

  이른바 한량(閑良)들의 꿈인 무관(武官)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무과(武科)라는 과거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이 무과시험은 문과처럼 소과를 거쳐야만 응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곧장 무관의 등용시험인 무과시험을 치르게 되므로 무과(武科)에 합격한자는 대과에 해당하는 홍패를 합격증명서로 주고, 관직을 내렸다.

  잡과(雜科)는 기술직이 임용시험으로서 석과(譯科). 의과(醫科). 율과(律科). 음양과(陰陽科)로 나누었다.

  

  

  문과는 숭뭍정책(崇文政策)의 영향으로 가장 중시되어 대과(大科)라고 칭하였으며, 이에 비해 생원. 진사과는 소과(  小科)라 하였다. 

  문관는 1차시험인 초시(初試)와 2차시험인 복시(覆試)와 3차시험인 전시(殿試)가 있는데, 초시는 한성부에서 실시하는 한성시(漢城試),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관시(館試), 각 도(道)에서 실시하는 향시(鄕試)의 3종이 있으며, 모두 3년에 한 번씩 가을에 실시하였다. 

  이 초시의 합격자를 이듬해 봄에 서울에 모아 명륜당 및 비천당(丕闡堂)에서 2차시험을 보게 하였는데 이것을 복시(覆試)라고 하였다. 복시에 합격한 자는 다시 궁궐안의 전정(殿庭)에서 임금이 친히 시험을 보였는데 이것을 전시(殿試)라 하였다.

  보시(覆試)에서 선발된 33인의 합격자를 최종시험인 전시(殿試)에서 성적에 따라 다시 갑. 을. 병으로 나누는데, 갑과( 甲科)는 3명, 을과(乙科)는 7명, 병과(丙科)는 23명으로 나눈다.      

  갑과에 뽑인 3인 중에서 1등은 장원랑(壯元郞)이라 하여 종6품직의 홍문관 벼슬을 주고, 2등은 아원(亞元) 또는 방안(榜眼)이라 하며, 3등은 탐화랑(探花郞)이라 하여 각각 정7품직의 벼슬을 내렸다.

  을과에 합격한 7명에게는 정8품직의 벼슬을 내렸으며, 기성 관리로서 승진을 위해 응시한 자는 2품 등급을 올려줬다. 또한 병과에 합격한 23명에게는 정9품직의 벼슬을 내렸으며, 성균관. 승문원. 교서관의 권지(權知: 임시직)에 임명했다.

 또한 무과 합격자에게도 문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품계를 주어 임용했다.

  원칙적으로 문과는 관리임용시험의 성격을 띠고 있어 반드시 소과를 거쳐야만 응시할 수 있었으나 ,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미 벼슬을 하는자에게도 승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중시(重試)제도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기성 관료로서 합격한 사람에게는 그 성적에 따라 품계(品階)를 더하여 승진시켰다.

 

 

문벌제도(門閥制度)

문벌제도(門閥制度)란 문벌(門閥)의 음덕(蔭德)으로 그 자손들이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임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문음(門陰)과 천거(薦擧)

 문음(門蔭)』은 글자 그대로 문벌(門閥)의 음덕(蔭德)으로 벼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높은 관직자나 명신(名臣)· 공신(功臣)· 유현(儒賢)· 전망자(戰亡者)· 청백리(淸白吏) 등의 자손을 과거를 치르지 않고 관리에 임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또 『천거(薦擧)는 사임(士林) 중에서 학행(學行)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재야 인사를 현직 고관이나 지방관의 추천에 의해 관리로 발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문음(門蔭)과 『천거(薦擧)를 아울러서 음사(蔭仕)· 음직(陰職) 또는 남행(南行)이라 일컬었다.

   사림(士林)의 거물급 제야인사는 특히 "유일(遺逸)"이라 하여 세간의 존경을 크게 받았는데, 조선조 역대의 상신(相臣: 정승) 366명 중에서 "유일(遺逸)"로서 정승의 반열에 오른 인물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미수 허목(眉수 許穆).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 명제 윤승(明제 尹승).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 등 5명뿐이다.

  그 중에도 허미수(許眉수)는 63세 때 처음으로 지평(持平: 정5품직)이 되어 80세에 우의정(右議政)이 됨으로써  늦벼슬의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문관(文官)의 경우에도, 그 벼슬자리는 크게 내직과 외직으로 구분되는데, 내직은 중앙 각 관아의 관리직인 경관직(京官職)을 말하고, 외직은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판관. 현감. 찰방 등 지방의 관직을 말한다.

  내직 중에서도 옥당(玉堂)과 대간(臺諫) 벼슬을 가장 으뜸으로 쳤는데, "옥당"이란  왕의 자문과 경적(經籍). 문한(文翰). 경연(經筵) 등의 일을 처리하는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인데, 옥당으로 칭해지는 벼슬의 직위(職位)는  부제학(副提學) 이하 응교. 교리. 부교리. 수찬. 부수찬  등을 말하고, 대간(臺諫)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직으로서 사헌부의 대사간. 집의. 장령. 지평. 감찰과 사간원의 대사간. 사간. 헌납. 정언 등의 직책을 말한다.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을 삼사(三司)라고 칭하는데, 삼사의 관리는 학식과 인망이 두터운 인물로 임용하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삼사의 직위는 흔히 "청요직(淸要職)"이라 하여 명예스럽게 여겼다. 따라서 삼사는 사림세력의 온상이 되기가 일쑤여서 조정의 훈신들과 자주 알력을 일으킴으로써 당쟁을 격화시키는  한 원인을 이루는 등, 역기능을 빚기도 했다.

 

 

 호 당(湖堂)

  족보(族譜)를 보면 높은 벼슬을 지낸 문신(文臣) 중에는 『호당(湖堂)을 거친 이가 많이 눈에 뛴다.

  호당(湖堂)이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인데,  조선 때 임금의 특명으로 문관 중에서 젊고 유능한 사람에게 은가(恩暇)를 주어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케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 이다. 즉 국비 장학생제도인 셈이다.

  이 제도는 세종 8년(1426)에 시초로 시행하였는데, 당시 집현전 부교리로 있던 권채(權採: 陽村의 조카=뒤의 提學)가 처음으로 뽑혔다. 여기에 뽑힌 사람은 "호당록(號堂錄)"에 오르고, 또 제학(提學). 대제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으례 호당을 거쳐야 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호당에 뽑히면 큰 영예로 여겼으며, 그만큼 출세길도 빨랐던 것이다

 문 형(文衡)
 

  문과(文科)를 거친 문신(文臣)이라도 반드시 호당(湖堂)출신이라야만 『문형(文衡)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문형(文衡)이란 대제학(大提學)의 별칭인데, 문형(文衡)의 칭호를 얻으려면 홍문관의 대제학(大提學)과 예문관의 대제학, 그리고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이나  혹는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직해야만 했다.

  문형(文衡)은 이들 3관(三館)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임(職任)이므로 더 할 수 없는 영예로 여겼고, 품계(品階)는 비록 판서급(判書級)인 정2품(正二品)이었지만 명예로는 삼공(
三公 : 영의정 ·좌의정·우의정)이나 육경(六卿: 六曹判書)보다 윗길로 쳤다. 이 삼관(三館)의 최고 책임자인 대제학의 임기는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한 종신까지 재임하였다.

 역사상 여러 벼슬에서 최연소(最年少)기록을 세운 이는 한음 이덕형(漢陰李德馨)인데, 그는 20세에 文科에 올라 23세에 호당(湖堂)에 들었고 31세에 문형(文衡)이 되었으며, 38세에 벌써 우의정(右議政)이 되어, 42세에는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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