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정의와 족보관련 용어(用語)   목록가기    

 

 

.족보의 정의

  족보(族譜)는 한 씨족의 개인의 내력(來歷)과 조상의 열력(閱歷)을 기록함으로써, 그 가계(家系)를 알 수 있게 하는, 즉 한 집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족보를 집안의 보물처럼 여겨, 이를 열람할 때는 정한수를 떠 놓고 절을 두번(再拜) 한 후,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조상을 대하듯이 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온 족보가 해방후의 서구화와 핵가족 제도가 발전되면서 족보에 대한 마음의 궤(軌)가 다소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씨족관념 내지 성씨의식이 뿌리 깊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첫 대면의 인사를 할 때 종씨를 만나면 타성(他姓)바지보다는 한결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뿌리깊은 성씨의식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으며, 혈족끼리의 두터운 연대이식의 한 발로(發露라 하겠다. 

  따라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과 같이,  족보는 '피의 기록이며 혈연의 역사'이며, 한 씨족의 혈통과 가계를 가록한, 일문(一門)의 열전서(列傳書)라고 하겠다

♧.족보 보는 방법

첫째, 족보를 보기위해서는 '본인'이 어느 파(派)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만약, 자신의 파를 알지  못한다면 본인의 조상이 사셨던 지역과 그 지역에 살았던 파가 어떤 파였는가를 알아두어야 한다.

둘째, 각 파의 파조(派祖)로부터 본인이 몇 세(世)인지를 알아야 한다. 족보는 보통 기록 형식이 가로로 칸을 나누어서 같은 세대(世代)에 속하는 혈손을 같은 칸에 가로로 배열하기 때문에 본인이 해당하는 세(世)의 칸만 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몇 세(世)인지를 모른다면 항렬자로 세수를 헤아려야 한다. 

셋째, 항렬자(行列字)와 족보에 기록된 이름(보명:譜名)을 알아야 한다. 옛부터 집안에서 부르는 이름이나 호적에 올라 있는 이름에는 항렬자를 넣는 경우가 많으며, 호적에 올리지 않았더라도 족보에 실을 때는 반드시 항렬자를 넣은 이름을 기재해야 하기때문에 이를 알아야 한다.

  참고로, 세수(世數)를 모르시는 분들은 항렬자를 이용해서 세수를 알아야 한다.

♧.족보관련 용어 

본관(本貫)[관향(貫鄕)]

  본관(本貫)은 본(本). 관향(貫鄕). 관적(貫籍). 씨관(氏貫). 족본(族本). 향관(鄕貫) 등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흔히 본관. 본. 관향이란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법률용어로는 "본(本)"이 쓰이고 있다.

  본관(本貫)이란 시조(始祖)의 출생지 또는 그 씨족이 대대로 살아온 고장(世居地)을 가르키는 것으로, 즉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아직 성이 없던 시대에는 그 사람의 거주지가 신분(身分)의 표시로써 성(姓)의 구실을 했으며, 신라말~고려초 이후 성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혈족계통이 다른 동성(同姓)이 생겨남으로써, 혈족계통이 다른 동성(同姓)과 구별하기 위해 동족(同族)의 표시로서 본관을 널리 쓰게 되었다.

  이밖에 사관(賜貫)에 의해 본관을 정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왕이 나라의 공신이나 귀화인에게 일종의 상전(賞典)으로서 본관을 하사하는 사관(賜貫)제도가 있었다.예컨데 고려의 혁명공신 신숭겸(申崇謙)은 그의 선대가 춘천인이었으나 왕건으로부터 황해도의 평산(平山)을 사관받아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여진계(女眞系)의 청해이씨(靑海李氏)나 중국계의 밀양당씨(密陽唐氏) 등도 모두 고려말~조선초에 귀화하여 본관을 하사받은 것이다.

사관(賜貫)? 사성(賜性)? 사명(賜名)

  나라에 큰 공(功)을 세위 공신(功臣)에 녹훈된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귀화해 온 사람에게 포상의 표시로 왕(王)이 본관(本貫)이나 성씨(姓氏), 이름을 하사(下賜) 했다고 한다.

  예) - 천강성(天降姓)[하늘이 내려준 성]: 
                   박(朴), 석(昔), 김(金)
       - 사관(賜貫)?사성(賜性)?사명(賜名):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본관. 성. 이름
       - 토성(土姓): 토착 상류계급의 성.
       - 속성(屬姓):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의 성.           
       - 입성(入姓): 타 지방으로부터 이주한 자의 성.
       - 귀화성(歸化姓): 외국으로부터 귀화한 자의 성.

비조(鼻祖): 

  시조(始祖) 이전의 선계(先系) 조상중 가장 높은 분을 말한다.

시조(始祖): 

  초대(初代)의 선조, 즉 첫 번째 조상(祖上)을 말한다.

중시조(中始祖): 

  시조 이후에 쇠퇴하였던 가문을 중흥시킨 분을 말 하는 것인데, 이는 전종문(全宗門)의 결의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며, 어느 자파의 단독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세(世)와 대(代)

  세(世)는 대체로 씨족에서 많이 사용되며, 시조로부터 혈통의 흐름에 따라 차례로 탄생하는 인물에 대한 순번을 정하는 단위이다.

  시조 또는 중시조를 1세로 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계대를 말하며, 대(代)는 자기로부터 시조 또는 중시조에 이르기까지 위로 올라가는 계대를 말한다.

  다시말하면, 세(世)는 자기가 포함된 숫자를 말하고, 대(代)는 자기가 포함되지 않은 숫자를 말한다.

  예> 세(世) : 아들 2세, 손자 3세, 증손 4세 ......
        대(代) : 아버지 1대, 할아버지 2대, 증조 할아버지 3대, 고조 할아버지 4대.......

      <참고>: 세(世)와 대(代)

  세(世)란? 예컨대 조(祖)?부(父)?기(己:자기)?자(子)?손(孫)을 계열의 차례대로 일컫는 말이며, 대(代)란? 사람이 나면서부터 30년간을 1代로 잡는 시간적 공간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부자간(父子間)이 세로는 2세이지만 대로는 1대, 즉 30년간의 세월이 한번 경과하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선조로부터 아래로 후손을 가리킬 때에는 '세(世)'를 붙여서 시조를 1세(世), 그 아들은 2세(世), 그 손자는 3세(世), 그 증손은 4세(世), 또 그 현손은 5세(世)라 일컬으며  그와 반대로 선조를 말할 때에는 자기가 포함되지 않으므로 아버지 1대, 할아버지 2대, 증조 할아버지 3대 등으로 일컫는다.

  그러므로 후손을 말할 때에는 누구의 몇 세손, 그와 반대로 선조를 말 할 때에는 누구의 몇 대조라 일컫는다.

◎사손(嗣孫)과 사손(詞孫) : 

  사손(嗣孫)이란 한 집안의 종손(宗孫), 즉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하며, 사손(詞孫)이란 봉사손(奉祀孫)의 줄임말로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출계(出繼)와 계자(繼子)

  출계(出繼)란 자식이 없는 친척에게 양자로 가는 것을 말하며, 계자(繼子)란 자식이 없을 때 친척의 자식을 양자로 받아 자기의 세계(世系)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족보를 편수할 때 후사(後嗣)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할 때에는 양자를 맞아 세계를 이었고 이 경우에는 계자(系子)라고 써서 적자(嫡子)와 구별했으며, 계자의 경우는 족보에 생부(生父)를 반드시 기록했다.

  또 생가의 족보에는 출계(出繼)라고 기록했고, 양자를 들일 때는 되도록 가까운 혈족(血族) 중에서 입양하고, 또 호적이 없는 자를 입적시켜 세계를 잇게 하는 경우는 부자(附子)라고 쓴다. 옛날에는 적자 이외의 자로 세계를 잇고자 할 때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파양(罷養)을 하고자 할 경우에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름자(名字)

아명(兒名)과 관명(冠名)

  옛날에는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을 아명(兒名)이라 했고, 남자가 20세가 되면 관례를 올리면서 짓게 되는 관명(冠名)이 있었다. 

  관명을 흔히들 자(字)라고 했고, 자는 집안 어른이나 스승, 선배 등이 성인이 된 것을 대견해 하는 뜻으로 지어 주었다.

호(號)

  옛날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임금, 부모, 스승과 존장의 앞에서만 쓰이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동년배, 친구 그 외 사람들은 자(字)로써 불렀다. 한편 어린 사람이나 격이 낮은 사람, 또는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서 호(號)를 지어 불렀다. 

  호는 남이 지어 줄 수도 있고, 스스로 짓기도 했었다. 호는 요즘도 쓰인다. 

시호(諡號)

  신하가 죽은 뒤에 임금이 내려 주는 호를 시호(諡號)라 하였다. 시호를 내려 주는 것을 증시(贈諡)라고 하였으며, 죽은 뒤 장례 전에 증시하지 못하고 훨씬 뒤에 증시하게 되면 그것을 추증시(追贈諡)라고 하였다.

함(啣)과 휘(諱)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높여서 함(啣)이나 명함(名啣)이라 하고, 더 높여서 존함(尊啣)이 라고도 한다.

  반면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휘(諱)라 한다. 

  항렬(行列)이란 같은 혈족(血族) 안에서 상하관계(上下關係)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만든 서열로, 1세조로부터의 세수(世數)를 나타낸 것이며, 정해진 글자로 각 항렬을 나타내는 것을 항렬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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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신(相臣)은 조선시대 의정부의 최고관직(정1품)으로서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삼의정(三議政)의 통칭이다. 삼의정은 국가의 최고의결권자로서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을 총람했다. 이는 합의체였으므로 삼의정 중 어느 한 사람이  반대하여도 왕은 정책결정에 구속을 받았다. 따라서 상신은 인신(人臣)의 최고지위요 영예였다.

  조선조의 상신총수는 366명으로서  그중 무과 출신이 7명, 음보가 20명, 유일이 5명, 그밖에는 모두 문과 출신이다.

  그런데, 문반우위(文班優位)의 조선조에서 무과 출신으로 상신의 반열에 오르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무과 출신으로 상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은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겨우 7명뿐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영의정은 신경진(申景진:平山신씨=平城府院君.仁朝廟庭 配享).박원종(朴元宗:順天박씨=중종반정공신), 좌의정은 최윤덕(崔潤德:通川최씨=세종조).홍달손(洪達孫:南陽홍씨=세조조).구인후(具仁후:綾城구씨=인조반정공신), 우의정은 조영무(趙英茂:漢陽조씨=개국공신)와 이완(李浣:慶州이씨=현종조)이다.

  특히 사림의 거물급인사는 유일(遺逸)이라 하여 크게 세간의 존경을 받았는데, 조선조의 역대 상신(정승) 중에서 유일로서 정승에 오른 인물은 송시열(宋時烈).허목(許穆).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권상하(權相夏) 등 5명뿐이다. 그중에서도 허목은 63세 때 처음으로 지평(持平;정5품)이 되어 80세에 우의정이 됨으로서 늦벼슬의 기록을 세웠다.

◈ 음보(蔭補)는 문벌(門閥)의 음덕(蔭德)으로서 벼슬하는 것인데, 높은 관직자나 명신.공신. 유현(儒賢).전망자(戰亡者).청백리 등의 자손을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임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또 천거는 사림(士林) 중에서 학행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재야인사를 현직고관이나 지방관의 추천으로 벼슬에 발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음보와 천거를 아울러 음사(蔭士) 또는 음직(蔭職)이라 일컬었다.

 

태조조
배극렴(裵克廉) 성주인(星州人) 영의정 김사형(金士衡) 안동인(安東人) 좌의정
조   준(趙   浚) 평양인(平壤人) 영의정 정도전(鄭道傳) 봉화인(奉化人) 영의정
정종조
심덕부(沈德符) 청송인(靑松人) 좌의정
태종조
이  서(李   舒) 홍주인(洪州人) 영의정 민  제(閔  霽) 여흥인(驪興人) 좌의정
하  륜(河  崙) 진주인(晋州人) 영의정 성석린(成石璘) 창녕인(昌寧人) 영의정
이거이(李居易) 청주인(淸州人) 영의정 이  무(李  茂) 단양인(丹陽人) 우의정
조영무(趙英茂) 한양인(漢陽人) 우의정 권중화(權仲和) 안동인(安東人) 영의정
이  직(李  稷) 성주인(星州人) 영의정 남  재(南  在) 의령인(宜寧人) 영의정
유  량(柳  亮) 문화인(文化人) 우의정 유정현(柳廷顯) 문화인(文化人) 영의정
박  은(朴  은) 반남인(潘南人) 좌의정 한상경(韓尙敬) 청주인(淸州人) 영의정
심  온(沈  溫) 청송인(靑松人) 영의정
세종조
이  원(李  原) 고성인(固城人) 좌의정 정  탁(鄭  濯) 청주인(淸州人) 우의정
유  관(柳  寬) 문화인(文化人) 좌의정 조  연(趙  涓 한양인(漢陽人) 우의정
황  희(黃  喜) 장수인(長水人) 영의정 맹사성(孟思誠) 신창인(新昌人) 좌의정
권  진(權  軫) 안동인(安東人) 좌의정 최윤덕(崔潤德) 통천인(通川인) 좌의정
노  한(盧  한) 교하인(交河人) 우의정 허  조(許  稠) 하양인(河陽人) 좌의정
신  개(申  개) 평산인(平山人) 좌의정 하  연(河  演) 진주인(晋州人) 영의정
황보인(黃甫仁) 영천인(永川人) 영의정 남  지(南  智) 의령인(宜寧人) 좌의정
문종조
김종서(金宗瑞) 순천인(順天人) 좌의정
단종조
정  분(鄭  분) 진주인(晋州人) 우의정 수양대군 세종자(世宗子) 영의정
정인지(鄭麟趾) 하동인(河東人) 영의정 한  확(韓  確) 청주인(淸州人) 좌의정
세조조
이사철(李思哲) 전주인(全州人) 좌의정 정창손(鄭昌孫) 동래인(東萊人) 영의정
강맹경(姜孟卿) 진주인(晋州人) 영의정 신숙주(申叔舟) 고령인(高靈인) 영의정
권  람(權  擥) 안동인(安東人) 좌의정 한명회(韓明澮) 청주인(淸州人) 영의정
구치관(具致寬) 능성인(綾城人) 영의정 이인손(李仁孫) 광주인(廣州人) 우의정
황수신(黃守身) 장수인(長水人) 우의정 심  회(沈  澮) 청송인(靑松人) 영의정
박원형(朴元亨) 죽산인(竹山人) 영의정 조석문(曺錫文) 창녕인(昌寧人) 영의정
홍달손(洪達孫) 남양인(南陽人) 좌의정 최  항(崔  恒) 삭령인(朔寧人) 영의정
구성군 준(浚) 세종손(世宗孫) 영의정 강  순(康  純) 신천인(信川人) 영의정
김  질(金  질) 안동인(安東人) 좌의정 홍윤성(洪允成) 회인인(懷仁人) 영의정
예종조
윤자운(尹子雲) 무송인(茂松人) 영의정 김국광(金國光) 광산인(光山人) 좌의정
윤사분(尹士昐) 파평인(坡平人) 우의정
성종조
한백륜(韓伯倫) 청주인(淸州人) 우의정 성봉조(成奉祖) 창녕인(昌寧人) 우의정
윤사흔(尹士昕) 파평인(坡平人) 우의정 윤필상(尹弼商) 파평인(坡平人) 영의정
홍  응(洪  應) 남양인(南陽人) 좌의정 이극배(李克培) 광주인(廣州人) 영의정
노사신(盧思愼) 교하안(交河人) 영의정 허  종(許  琮) 양천인(陽川人) 우의정
윤  호(尹  壕) 파평인(坡平人) 우의정 신승선(愼承善) 거창인(居昌人) 영의정
연산조
정  괄(鄭  괄) 동래인(東萊人) 좌의정 어세겸(魚世謙) 함종인(咸從人) 좌의정
한치형(韓致亨) 청주인(淸州人) 영의정 성  준(成  俊) 창녕인(昌寧人) 영의정
이극균(李克均) 광주인(廣州人) 좌의정 유  순(柳  洵) 문화인(文化人) 영의정
허  침(許  琛) 양천인(陽川人) 우의정 박숭질(朴崇質) 반남인(潘南人) 좌의정
강구손(姜龜孫) 진주인(晋州人) 우의정 신수근(愼守勤) 거창인(居昌人) 좌의정
김수동(金壽童) 안동인(安東人) 영의정 정문형(鄭文炯) 봉화인(奉化人) 우의정
중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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