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보(大同譜)와 파보(派譜)는 어떻게 다른가?   목록가기    

 

       

  우리나라의 족보에는 대동보(大同譜)와 파보(派譜)이 분별이 있는데, 대동보는 시조 이하 동계혈족(同系血族)의 원류(源流)와 그 자손 전체의 분파(分派)관계를 기록한 계통록(系統錄)이며, 파보는 대동보에서 분파한 그 각 분파(分派)의 자손을 기록한 족보이다.

  후손이 적은 씨족은 대동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후손이 번창하여 파계(派系)가  많은 씨족은 파별로 족보를 따로 만들고, 대동보에는 분파된 시말(始末)과  그 계통(系統)만을 밝혀 놓는다.

  흔히 동성동본이면서도 혈족계통이 서로 다르거나 또는 시조는 같지만 분파된 연유가 확실치 않아 계대를 확실히 밝힐 수 없는 경우에는 족보를 따로 만들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에 따로 만드는 족보는 분파가 아니므로 대동보에 해당한다.

  분파란 마치 나무의 큰 줄기에서 작은 줄기가 뻗고, 그 줄기가 다시 여러 갈래의 가지를 치는 것과 같아서, 자손이 번창한 씨족일수록 분파가 많게 마련이다.

 

  파(派)를 구분하는 까닭은 후손들 각자의 혈연적인 계통을 명확히 밝히고 촌수를 분명하게 밝히는데 그 연유가 있다.

  그래서 가령 어느 선대에서 특출한 형제가 나거나 딴 지방으로 이거(移居)하는 선조가 생기면  그의 후손들은 각각 별개의 파(派)로 구분되고, 또 그 각각의 파는 아래대로 내려가면서 그같은 분화(分化)작용을 되풀이 하게 마련인데, 이러한 현상은 어느 씨족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이다.

 

  또 어느 문중(門中)이건 대개는 <경파(京派)>와 <향파(鄕派)>의 두 계통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파(派)와는 그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서울에서 대대로 살면서 벼슬을 지낸 집안은 포괄적으로 경파(京派)라 칭하고, 고향에서 대대로 살아온 집안은 역시 포괄적으로 향파(鄕派)라고 칭한다.

  실례(實例)로 달성서씨의 경우, 일찌기 서울에 올라와 벼슬을 한 경파(京派)와 고향에서 살면서 벼슬과는 별반 인연이 없이 지내온 향파(鄕派)가 있는데, 이들은 같은 시조의 자손이면서도 대동보마저 각기 따로 만들고 있다. 세계(世系上)으로는 향파(鄕派)가 큰 집이 되는데 경파(京派)측이 일찌감치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영달하자 족보를 편찰할 때도 고향의 일족(一族)은 버려 두고 자기들끼리만 따로 족보를 마들았다는 예기다. 이로 인해 경파와 향파 간에 미묘한 감정이 오랫동안 밑바닥에 깔려 왔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경우에 청송심씨가 있다. 이들은 오늘날에도 경파와 향파가 각기 때동보를 따로 만들고 있으며, 향파는 경파를 가리켜서 <서울집>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시조가 같은 동성동본 사이에 대동보를 따로 만드는 씨족은 그리 흔치 않다. 대동보를 따로 만드는 경우는 비록 동성동본이지만 시조가 다르거나 시조는 같지만 분파된 연원이 확실치 않아 계대를 확실히 밝힐 수 없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 통례이며 또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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