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영등 할미        목록가기

 

 

 

 

 영등굿은 음력 2월달에 영등신에게 올리는제주 고유의 무속제이다. 영등신은 흔히 "영등할망"이라 부르는 신으로서 음력 2월 1일 제주를 찾아와서 같은달 15일에 떠나간다고 하며 특히 어촌에서 

어민들의 해상안전과 해녀채취물의 풍요를 빌기 위하여 행하는 이 굿은 2월 1일에 영등신 환영제를 하고 2월 13일에서 15일 사이에 영등 송별제를 올린다. 이 기간동안에는 바다에 나가서도 안되며 지붕을 이거나 밭에 나가 김을 매어서도 안되는 여러가지 금기를 지켜며 생활의 풍요를 내려받기 위하여 영등신을 정성꼇 모셔진다.

  이처럼 영등굿은 제주 특유의 신앙과 생활민속이 담겨 있으며 제주의 민속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제주도 지방무형문화제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    등   굿
  

  영등신(靈登神)은 주로 영남지방과 제주지방에서 받드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영등할머니라고도 한다. 영등은  바람을 일으키는 신으로, 2월 1일에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을 살펴보고  20일이 되면 다시 승천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영등할머니는 딸 혹은 며느리를 데리고  2월 초하룻날에 내려 왔다가 3일, 15일 또는 20일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각기 다르게 믿고 있는데, 영등신앙은 주로 영남 지방과 제주도에 분포되어 있다.

  영등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을 데리고 오면 일기가 평탄하지만 색시(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바람이 몰아쳐 농가에 피해를 입힌다고 한다. 이는 인간관계에 있어 친정어머니와 딸은 의합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는 불화와 갈등이 있는데, 그에 비유해서 일기의 변화를 짐작한 결과이다.

  일기가 불순하면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일기가 순조로우면 풍작을 바랄 수 있으니 영등 할머니는 바람과 농작의 풍흉과 관계되는 농신(農神)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영등할머니가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거센 바람이 일어 난파선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은 이 기간 동안은 출어를 삼가며 일을 쉰다. 이와 같이
영등할머니는 농신이자 풍신(風神)이어서 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에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풍재(風災)를 면하기 위해 영등할머니 와 그 며느리에게 풍신제(風神祭)를 올리는데, 이를 '바람 올린다'고 한다.

  특히 바람이 심한 제주에 서는 '영등제'인
<풍신제(風神際)>를 지내는데, 이 풍신제는 음력 2월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무속적 부락제로서, "동국세시기"나 "동국여지승람"에  그 기록이 있다. 제주도의 어부.해녀가 해상 안전과 생산의 풍요를 빌기 위한 것으로서, "영등할망"이라고 불리는 여신이 섬 주변의 해산물을 증식시켜 준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영등할머니가 인간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금속(禁俗)이 있다.

  즉 영등할머니를 맞이하기 위하여
황토를 파다가 문 앞에 뿌려 신성하게 하며, 대나무에 오색 헝겊을 달아 사립문에 매달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며, 창도 바르지 않고 고운 옷을 입는 것도 삼간다. 또 논밭 갈이는 물론, 땅을 다루거나 쌀을 집밖으로 내지 않는다. 한편 영등할머니가 하늘로 오르는 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조금 흐려도 길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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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할만네 - 제 올리고 소원 빌던 사라져 가는 미풍양속,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영등할미’의 전설이 전해지며 영등 할미에게 한해의 풍어(豊漁)와 

농사의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렸다.

 

  필자는 영남지역에서 자랐는데, 2월 초하루가 되면 어머님께서 부엌에 제물을 차려놓고, 

영등할멈에게 식구들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고하고, 소원성취와 액(액)의 소멸을 빌면서 소지

(燒紙)를 하곤 했다.

 

소지(燒紙):신령 앞에서 비는 뜻으로 희고 얇은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리는 일, 또는 그 종이.

 

  영등 할미가 세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사람들은 부엌에다 대나무막대기의 끝을 쪼개 받침대를 만들어 세우고 그 위에 종지를 얻고 정화수(井華水)를 올리기도 했으며, 대를 꽂은 땅에는 황토를 뿌리고 동백나무가지를 꽂았다.

  영등 할미는 세 사람으로 10일에는 상등할미가 올라가고, 15일에는 이등할미가, 20일에는 하등할미가 상천하며 세 번째의 마지막 할미가 상천 할 때는 대부분의 가정마다 제를 지내 안택(安宅)과 풍연을 기원했다.

  거제를 비롯한 통영 고성 등 남해안일대 지역에서는 이때를‘할만네’라고 부르며 영등 할미가 상천 하는 날마다 팥밥을 해 먹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영등 할미가 상천 하는 날 정성껏 저녁상을 차리고 소지종이를 불살라 올리는 등 분신제를 지냈으며 특히 통영지역은 명정동 충렬사 앞마당에서 합동 분신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 여자들은 동백가지를 담은 물동이에 명정 샘물을 길러 머리에 이고 충렬사 앞마당을 돌았으며 이때만은 유일하게 가정의 규수들과 총각들의 어울림도 허락돼 남녀가 함께 어울려 마당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다.

  이때 부르던 노래들은 영등 할미를 우리의 삶과 연계시켜 소박한 소원을 비는 내용이었다.

 "영등 영등 할마시야 한 바구리 만 캐어다오/ 두 바구리 만 캐어주소 영등 영등 할마시야/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갯물이 많이 나서/ 두 바구리 캐고 나면 바다 물이 들어오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등할마시 비나이다.(한국구비문학대계 8-1. 8-2 수록)"

 

 "영등 영등 할마시 한 바구리 만 캐어주소/ 두 바구리 만 되어주소/ 

영등 영등 할마시/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등 할마시 비나이다/

             (영등 할마시 나물 캐는 민요, 제보자: 거제시 사등면 성내리 신만순, 1926년생)”

 

 "영등 영등 할마시야 봄나물을 캐러왔소/ 많이도 하지말고 적기도 하지말고/

 한 바구리 만 불아주소/ 영등 영등 할마시야

                                         (제보자: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박또악. 1910년생)”

   특히. 나물 캐던 노래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아낙네들이 이른 봄 나물을 캐며 아직 자라지 않은 나물들이 제대로 캐어지지는 않고, 캔 나물들이 햇빛에 시들어 오히려 줄어들 때 나물 캐던 칼을 땅에 꽂아두고, 그 앞에 앉아 안타까운 마음에 바구니를 돌리면서 불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노래마저 채록(採錄)되지 않은 채, 뇌리에서 사라져 완벽한 곡조조차 알 길이 없어졌고, 더구나 우리사회의 민도(民度)는 정치와 산업으로 치닫으며 문화에 대한 민도까지 더욱 낮아져 할만네의 세시풍속은 전설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하지만 할만네는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역민이 함께 사랑을 나누게 하고 또한 아름다운 마음씨와 숭고한 정신세계를 창조해 선조와 우리들 후손의 단결된 민족성(民族性), 또한 순하디 순한 정신세계도 이어지게 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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