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본체                목록가기

1.본초학이란 무엇인가?  2.본초학의 연혁  3.동의학(東醫學)은 어떻게 발전하여 왔나      

 

  한의학의 본체

  한약이란 동양의학에서 사용되는 식물. 동물. 광물 등의 약을 말하며, 자연계의 모든 물질에 걸쳐 널리 가려 쓰이고 있으나 그 대부분은 식물인 것이 특징이며, 대개는 생약(生藥) 그대로를 한의학적인 이론과 원리에 의거하여 처방조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1. 본초학이란 무엇인가?

  동양의학에 사용되느 약물을 통틀어 본초(本草)라 일컬으며, 이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본초학(本草學)이라 한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약용식물(藥용植物)의 기본과 약효를 밝히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그 이론 체계는 건강과 질병 치료를 위주로 한 동양의학 특유의 논리로 체계화 된 것이다.

2. 본초학의 연혁

  본초학 문헌으로 전해지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은 약 1,600 년전에 도홍경(陶弘景)이 오랜 세월을 두고, 경험과 직관과 독특한 판단에서 집성된 것을, 한의학의 비조(鼻祖)로 숭앙되고 있는 신농씨(神農氏)의 이름을 빌어,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 하였다. 

  전설적인 인물로 일컬어 지고 있는 신농씨(神農氏)는 여러 기지 약초를 맛보아 하루에  70회의 중독을 일으켜 가며 약성(藥性)과 약효(藥效)를 가려 저술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홍경(陶弘景)이 저술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자연의 이법(理法)에 견주어 365종의 약이 수록되어 있는데, 상품. 중품. 하품의 3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상품엔 120종으로, 상품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 이로우며 또 오래 살 수 있다는  보성약(補性藥)에 속하나, 그중에는  많이 써서는 안되는 약도 없지 않다. 이것은 그때까지도 약성의 구명(究明)이 불비(不備)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품에도 역시 120종으로, 이 중품에 속하는 약은 병을 치료하되, 약의 독성이 없어 오래 쓸 수는 있으나 상품약에 비해 신체를 보(補)하는 힘이 적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품에는 125종으로, 이들은 질병 치료를 위주로 하는 약이므로, 질병을 낫게 되면 바로 약을 중지해야 하며, 너무 오래 사용하면 오히려 이롭지 못한 약이다.

  그후 이 본초경 365종이 전래되면서, 당나라의 소공(蘇恭)이 114종을 더하고, 송나라의 류한(劉翰)이 또 125종을 더했으며, 그밖에도 장우석(掌禹錫). 당신미(唐愼微) 등이 증보시킨 것을 모두 합하면 1,588종이나 되며, 그뒤 "본초 강목(本草綱目)의 저자 이시진(李時珍:명나라 사람)이 이에 미비함을 느끼고, 374종을 증보하여 근 2,000 여 종(種)에 가까운  것을  상세히 수록하는 등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3.동의학(東醫學)은 어떻게 발전하여 왔나     

  한의학(漢醫學)과 동의학(東醫學:우리나라 의학을 지칭)이 학문으로서의 발전을 어떻게 하여 왔는가를 소개하고, 그 학리와 체계의 대강을 간추려서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한의학은 약 2,200 년전 중국 한나라 때에 최고(最古)의 원전(原典)인 "내경(內經)"이 완성됨으로써 한의학의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게 된 것이다.

  이 "내경(內經)"의 원저자는 알 수 없으나 내용은 전설적인 인물인 황제(黃帝). 기백(岐伯). 뢰공(雷公) 등 여섯 명의(名醫)들의 문답체로 기록된 것이다. 그 중 소문(素問)은 주로 생리(生理). 병인(病因). 병리(病理) 및 섭생과 양생법을 논하였고, 영추(靈樞)에는 해부(解剖). 생리(生理). 경락(經絡). 침. 뜸 치료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후 춘추시대의 편작(扁鵲)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난견(難經)"이라는 의서가 있는데, 이것은 한의학의 학리상 기초와 임상에 중요한 81항목을 들어 문답체로 서술한 것인데, 특히 내경(內經)에서의 생리와 치료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였다.

  그후 1,800년 전에 임상치료학서(臨床治療學書)로 장사 태수(長沙太守) 장중경(張仲景)이 지은 "상한론(傷寒論)"과  그 자매편으로 볼 수 있는 "금궤요약(金櫃要略)"이 나왔다.

  상한론은 주로 발열성질환에 관한 증세변화의 원칙과 치료법의 기준을 서술한 것이며, 금궤요약은  그 시대까지 창안된 처방으로 만성병 치료법을 서술한 것이다. 

  특히 상한론에서는 그 병증의 분류와 표현방법이 철학적 논리에 근거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그 병증의 정확한 파악과 처방의 묘리는 예지와 경험의 극치라고 하겠다. 의학의 진리는 역시 고대 동양인이 먼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현대의학에 대한 교훈적인 요소도 적지 않으며,이 치료법을 잘 체득하여 활용한다면, 매년 발생하는 하기뇌염 등도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의 기초 원리상 등한시 할 수 없는 약물학이 곧 한의학상의 본초학이다. 약 1,600년 전에 지은 도홍경(陶弘景)의 저서는 한의학의 비조(鼻祖)로 숭앙되는 신농씨의 이름을 빌어, 책명을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 하였다. 일용약물(일용약물) 365종을 택하여 약성(藥性)이  임상치료에 있어서, 인체 생명력에 영향을 끼치는 약능(藥能)에 따라 상. 중.하로 구분하여 약물치료의 기준을 세웠다.

  그뒤 앞서 예를 든 원전(原典)을 중심으로, 계속 연구하여 발전을 거듭하던 한의학은 금(金). 원(元) 시대에 이르러 류하문(劉河間). 장자화(張子和). 이동원(李東垣). 주단계(朱丹溪) 등의 사대가(四大家)의 출현을 보게 되었으며, 그들 주장의 학리(學理)와 치료법은 각기 달랐다.

  류하문(劉河間)은 심화(心火)를 강하(降下)시키고, 신수(腎水)를 더하여 상승(上昇)케 하는 것을 주장하여 그 사용하는 약재가 한량(寒凉)하므로 한량파(寒凉波)라 칭하엿고, 장자화(張子和)는 한.토.하(汗.吐.下)의 치법을신봉하여 특히 사하(寫下)를 주로 하므로 공하파(功下派)라 칭하였고, 이동원(李東垣)은 대개의 병은 소화기에 그 병원(病源)이 있다고 보아 위장론(胃臟論)을 주장하였고, 주단계(朱丹溪)는 매양 혈분(血分)의 부족이 병인(病因)이 된다고 하여 자음강화(滋陰降火)를 주장하여 양음파(養陰派)라고 칭하였다.

  이들 학설은 넓은 지역에서 각 시대의 사회적 환경과 각 개인의 생활풍습에 따라, 치병(治病)의 대상인 질병도 각각 특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들의 주장은 각각 일리(一理)가 있다고 하겠다.

  한의학의 발상은 고대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한 한문화(漢文化)에서 싹터 전아시아에 걸쳐 발전해온 것이다.

  중국 대륙의 문화가 우리나라와의 접촉이 뚜렷해진 것은 2,500 여년 전인 낙랑시대(樂浪時代)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사군(漢四郡) 초부터 북방조선에 흘러 들어온 이 이질적인 한의학은 점차 남부의 신라 백제에까지 보급되어, 고유의 민속요법과 혼융동화(混融同化)하면서 번성을 보게된 것이다.

  이러한 한의학의 발달이 삼국시대 중기에 이르러 특유한 체계로 발전하여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을 비롯한 고려조의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 어의찰요방(御醫撮要方) 등의 한의서가 간행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의학자의 양성과 우대책의 하나로 의학박사 제도까지 세웠고, 멀리 일본의 의학 전수에도 공헌하였다. 현 일본의 대판(大阪)이 세계적인 제약(製藥)도시로 등장한 그 연원도 고구려 사람 덕래(德來)가 일본왕의 초빙을 받고, 그의 의학과 의술 지식을 전수시키며 그 후손으로 하여금 업을 계승시켜 우대한 것이 효시였다. 그의 존칭을 난파약사(難波藥師)라고 불러, 지금도 해마다 제사(祭祀)가 행(行)하여 지고 있다.

  이렇게 고려말까지 근 1,500 년간을 두고 대륙 등과 교류하며 발전한 한의학이, 조선조의 집권과 더불어 획기적인 진흥책으로 새로운 난숙기에 접어 들었다. 이에 비로서 동의학(東醫學)의 독자적인 체계가 뚜렷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전기(全期)에 걸쳐, 동의학의 학술적 업적을 이룩한 의서(醫書)를 시대순(時代順)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의학의 자주적 발전에 눈을 뜬 우리위 선현(先賢)들은 중국 본위의 본초학을 자국 중심으로 옮기고 국산약물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자급자족책의 구현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했는데, 국약약전(國藥藥典)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밖에도 임진왜란 때, 왜장 가등(加藤)이 강탈하여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단 한 질이 남아 있는 "의방유취(醫方類聚)"가 있다. 이 내용은 세종 당시까지 전하여 온 전(全) 중국의 역대 당(唐). 송(宋). 원(元). 명조(明朝) 초기까지의 의서(醫書)를 총망라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재정리한 것으로 한의학 문헌을  총집성한 것이다.

  조선조의 제14대왕인 선조임금은 동양 최고의 완벽한 의서(醫書) 편찬의 웅지(雄志)를 품고, 허준(許浚)을 비롯한 몇몇 의학자에게 그 편찬을 위촉하게 되었다. 그 기간에는 왜병의 재침(再侵)과 학자들의 이산(離散) 및 중상 모략이 있었으나  기한(飢寒)에 떨며 심혈(心血)을 기우린 결과 완성된 것이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이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중국 사람들까지도 허준을 <동방(東方)의 의성(醫聖)>으로 경모하며, 현 중국과 일본에서도 수차례 국비(國費)로 발간된 바 있으며, 독일에서도 이미 번역판이 나온 것을 보아도 가히 그 연유와 가치를 짐작하리라 본다.

  또 근세에 와서 처녀지를 개척한 것으로,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이 있다. 이 체질의학은 철학적 논리와 실증을 부합시켜 체계화한 심신(心身) 종합 의학인데, 곧 각 장기(臟器)의 기질(氣質)과 기능(機能)의 강약의 차에 따라 사형(四型)의 체질로 구분한다.

  이 "사상의학(四象醫學)"은 태양인(太陽人:肝臟型). 태음인(太陰人:心肺型). 소양인(少陽人:腎臟型). 소음인(少陰人:脾臟型)으로 나누며, 이 사형(四型)의 체질은 기질적으로 차이가 생기며, 따라서 그에 따른 독특한 체질 생리(生理)와 병리(病理)설이 있으며, 같은 질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서로 다른 처방약으로 가려쓰는 특징을 같고 있다.   <세부론은 (5. 사상의학과 체질 항을 참고할 것.)>

  그밖에 임상의전(臨床醫典)으로 의문보감(醫門寶鑑). 제중신편(濟衆新編). 의종손익(醫宗損益).임상처방집인 방약합편(方藥合編). 사암(舍岩)도인의 오행칩법. 허임(許任)의 침구경험방(針灸經驗方). 소아과의 조정중(趙廷俊)의 급유방(及幼方). 외과의 치종지남(治腫指南). 본초의 약성가의 완성. 정다산의 마과회통(麻科會通). 법의학의 증수무면록(增修無면錄) 등은 다  특색 있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중국과 일본에까지 소개되어 높이 평가되고 있는 동의학(東醫學)의 문화적 유산들로써,  이상에서 서술한 것은 한국의학의 전반에 걸친 일관된 자주적 개성의 학문적 경향과 문화적 가치의 개요를 소개한 것이다. 

  우리 선현(先賢)들의 탁월한 의학적 두뇌와 문화적 재질이 저술에서 여실히 빛났고, 그 총합적 기교와 실증적인 과학적 태도의 견지에는 더욱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발전한 노련한 임상기술의 숙달은  본고장인 중국을 능가할 수 있도록 독창적인 지식이 배양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한의학(漢醫學)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섭취 동화되어 완전히 재창조된 우리 민족문화의 하나인 동의학(東醫學)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비록 중국 땅이 발상지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마치 용광로 속에 넣은 듯이  정련되어 다듬어지고 다시 학리와 체계를 세워, 실제 임상의학과의 부합에 치중돼 있으며, 한 가지라도 우리의 비판의식에 감식(鑑識) 안된 것이 없이 장단을 취사선택하여 그 정수(精粹)를 모으는 등, 우리의 민족적 재질이 남김없이 발휘된 것이다.

  이 학문이 근 1세기에 걸쳐 매몰기에 처한 탓도 있지만, 등하불명격으로 오히려 국내 학계보다 국제적인 학계에서 그 전통과 우수성이 높이 인정되고 평가되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삼목영(三木榮) 박사의 저술인 "조선의학사"의 서문에서, <한국의학에 전통치 못한 자는 동양의학을 논하지 말라>고 못박은  한 마디는, 곧 동의학의 비중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 동의학의 전통과 과거를 살피고 다시 현실을 직시(直視)하면 앞으로 우리 동의학의 발전의 방향과 진로의 지침이 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사람과 질병은 동일하나, 동양과 서양의 의학은 서로 상반된 사유와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동의학 전체에 걸친 현대적인 체계를 재정립하여, 서양의학인 현대의학과의 협조로 이.생화학(理.生化學)적인 연구방법의 실현이 긴급하며, 이같은 실현을 통해 동서의학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의학의 일원화를 지향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의학의 방대한 체계와 고전(古典)의 진수는 고이 깊은 심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10년 내에는 동.서 의학의 융합(融合)으로 완전한 일원화(一元化)를 꾀해야 할 시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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