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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정전일곽(正殿一廓): 근정전(勤政殿)       목록가기

 

                                                  경복궁 근정전(중심건물) 지역
      

 

  궁궐 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정전은 중요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가장 격식을 갖추어 지은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식을 거행해야 했으므로 근정전의 마당은 넓어야 했다. 이를 조정이라 한다. 또한 근정전은 높고 넓은 2층의 기단(월대)위에 세워졌는데 이는 행사시에도 신분에 따라 서는 위치의 격조를 달리하려는 의도로서 임금은 행사시 가장 높은 곳(어좌)에 앉아 문무 백관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또한 이 월대 주위로 돌난간을 두리고 각 모서리에는 사방을 다스리는 사방신과 시간을 주관하는 12동물의 형상을 한 12지신을 두어 궁궐의 정전을 보호하게 하였는데 이는 근정전을 더욱 살아있는 건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또한 근정전의 전면 계단에는 답도라 하여 중앙에 봉황을 새겨 두었는데 이는 왕조의 평안과 더불어 백성들의 태평을 기원하는 것이다. 

2층의 기단위에 세운 건물은 외형은 2층이지만 내부는 단층인 통층구조로서 크기면에서도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벽을 두지 않고 사방 문은 모두 들어 열수 있는 분합문으로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구조로서 행사에 적합한 구조를 띄고 있으며 1층과 2층의 외벽 기둥위에는 다포식의 화려한 공포가 아름다우며, 내부에서 천장을 받치고 있는 고주는 건물 바닥에서 2층 대들보까지 뻗어있으며, 내부 바닥은 전돌로 깔았고 북쪽 중앙에 어좌를 두었는데 왕의 편의를 위하여 계단을 사방을 두어 왕이 어좌로 접근시에 돌아감이 없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어좌 뒤로는 왕의 상징인 일월오악병의 병풍을 둘렀으며, 건물의 천장에는 황제를 뜻하는 황룡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원래 그보다 낮은 봉황이 그려져 있었으나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께서 황제로 등극하면서 용으로 바꾼 것이다. 


'근정전은 정궁의 정전으로서 최고의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일제시대에 많은 부분이 훼손 되어졌지만 여전히 그 근엄함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의 궁궐에만 찬사를 보내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이다. 근정전은 세계 어느 건물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석조 건축물인 것이다

 

근정문: 정문은 정전인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이며, 외삼출목(外三出目)·내삼출목(內三出目)의 다포계(多包系) 우진각 지붕이다.

정면에서 보면 3칸인데 아래층엔 문얼굴을 내고 큼직한 문짝을 달아 여닫게 하였고, 위층은 사방에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는 시설을 하였다.

 

  이 정문은 평소에는 닫혀있다가 궁궐의 중요행사시에 열렸다. 따라서 일반 관원들은 근정문의 좌우로 달린 작은 문을 이용하였는데, 문반은 동쪽의 일화문을 이용하였고 무반은 서쪽의 월화문을 통해 조정 출입을 하였다.

현존하는 조선왕궁의 정전 정문 중 유일하게 중층 건물로 남아 있다.

 

 근정전 입체도

         근정전 실제사진

정전은 높다. 박석이 깔린 조정 바닥으로부터 기단을 두 층 쌓고 그 위에 근정전을 지었다. 그러므로 근정전은 우러러보게 되어 있고 올라가게 되어 있다. 두 층 기단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계단을 내었는데, 남쪽과 북쪽에는 하나씩,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는 둘씩이다.

그 가운데 남쪽 계단은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향하는 삼도와 연결되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중 가운데 부분은 좌우의 계단과는 달리 전면에 커다란 사각형의 돌이 비스듬히 박혀 있다. 이 돌을 답도라 한다.

밟는 길이라는 뜻이겠으나, 실제는 가마를 탄 왕이 그 위로 지나가는 길이라는 뜻이 되겠다.

근정전은 그 뒤 배경을 이루고 있는 산을 먼저 보아야 한다.

백악이 어머니의 품이 되어 근정전을 품고 있다. 인왕이 부드러우나 힘있는 팔이되어 근정전을 보듬고 있다.

근정전을 둘러싼 회랑(둥근 기둥들)이, 넓은 마당이, 마당에 깔린 평평한 돌들이 , 그 위에 놓인 품계석이, 높은 이층 기단이, 기단에 둘러쳐진 돌난간이,난간에는 돌짐승들이 근정전의 단청과 창살 등이 있다.

 

  근정전

 
면이 5간, 측면이 5간 해서 25간이나 된다.

근정전은 상·하 월대 위에 이층으로 지은 거대한 건물이다.

건물 내부는 아래 위층의 구분을 없이하여 넓고 높다. 다포양식(多包樣式)의 건물로,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이성석축기단(二成石築基壇) 위에 세워졌으며, 정면 5칸(30 m). 측면 5칸(21 m)의 중층팔작(重層八作) 지붕의 큰 직사각형 건물이다.

기단의 4면은 석란(石欄)으로 둘려지고, 전후좌우면에는 쌍봉운무늬[雙鳳雲文]를 조각한 돌계단이 있어 화강암판을 깐 뜰과 연결되며, 정원 좌우에는 정1품 이하의 품석(品石)을 세웠다.

건물 내부에는 10개의 높은 기둥을 정면으로 4개, 측면으로 3개씩을 세워 천장을 받들게 함과 동시에 궁전 안을 중앙부의 내진(內陣)과 주위를 도는 외진(外陣)으로 구분하는 역할을 겸하게 했다.

중앙간 북쪽 후면에 방형(方形)의 보좌(寶座)를 두고, 그 단상에 어좌(御座)와 그 뒤에 오악일월(五嶽日月)을 그린 병장(屛障)을 세우고, 그 위에 화려한 보개(寶蓋)를 달았다.

두공(枓)은 상·하층이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이며 내출목에서는 수설(垂舌)이나 앙설(仰舌)이 구름무늬처럼 새겨진 운궁(雲宮)으로 되었고, 살미[山彌] 표면의 초화각무늬[草花刻文]이나 단청(丹靑)·금색쌍룡(金色雙龍)과 조화되어 화려한 장식적 효과를 낸다.

전체적으로 장식적 의장(意匠)을 마음껏 담고 있어, 다소 과식(過飾)의 감이 있기는 하나 조선 말기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고, 당시 건축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표본적 건물이다.

중앙의 한길 가운데 높은 단의 의자 이것이 용상이다.

용상뒤 세폭의 나무 병풍 삼곡병이 용상을 옹위하고 있다. 물결치는 바다, 소나무, 대나무가 우거진 사이에 기암괴석이 들어서 있다.

다섯봉우리와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해와 달, 일월오악병이 놓여 있다. 그 위로는 조각을 더욱 정교하게 한 나무로 된 지붕 모양의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왕의 존엄을 드러내기 위한 갖가지 상징들이 베풀어져 있다.

근정전 행사 때 예절에 어긋안 행동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제사, 원릉 참배 및 조회 때에 예절에 어긋난 자와 관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은 자는 월급 1/2를 깎는다. 이를 살펴야 할 담당 관리가 적발하지 못하면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

 

 
       
 1950년대의 근정전. 왼쪽에 경회루, 오른쪽에 자경전이 보인다.               근정전 뜰(조정)의 품계석

 

 

 
         
  

품계석 뒤 박석에 박혀 있는 쇠고리
차일을 칠 때 끈을 매기 위한 것(위 그림을 참조하세요)

쇠고리

이품 품계석 뒷편쯤에는 동쪽에 한군데, 서쪽에 두 군데 쇠고리가 있다.

이것이 무엇일까 이것은 햇살이나 빗발을 가려줄 차일을 쳤는데 이 고리는 그 차일 치는 줄을 매던 것이다.

고위 관원이 서는 정도에다가 멘것 같다

품계석 뒤 박석에 박혀 있는 쇠고리를 이용하여 차일을 친 모습  
 
                          
                                                           근정전 지역의 근위서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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