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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동궁일곽(東宮一廓):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      목록가기    

 

동궁은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의 궁전을 가리키는 말로서 세자에 대한 경칭으로도 쓰인다. 동궁은 세자를 제왕으로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모두 갖추도록 설계되었으니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 세자궁에 딸린 내관들의 처소, 세자가 신하로부터 조하를 받는 곳이다.

 또 세자가 스승을 모시고 서연이나 시강 등의 강학을 받으며 세자를 위한 책고와 세자를 호의하는 곳 등이다. 이러한 시설은 각각 정궁의 연조, 치조, 외조에 해닫하는 것을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도 이러한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또 세자가 스승을 모시고 서연이나 시강 등의 강학을 받으며 세자를 위한 책고와 세자를 호의하는 곳 등이다. 이러한 시설은 각각 정궁의 연조, 치조, 외조에 해닫하는 것을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도 이러한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동궁(東宮)

동궁은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의 궁전을 가리키는 말로서 세자에 대한 경칭으로도 쓰인다. 동궁은 세자를 제왕으로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모두 갖추도록 설계되었으니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 세자궁에 딸린 내관들의 처소, 세자가 신하로부터 조하를 받는 곳이다.

 또 세자가 스승을 모시고 서연이나 시강 등의 강학을 받으며 세자를 위한 책고와 세자를 호의하는 곳 등이다. 이러한 시설은 각각 정궁의 연조, 치조, 외조에 해닫하는 것을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도 이러한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또 세자가 스승을 모시고 서연이나 시강 등의 강학을 받으며 세자를 위한 책고와 세자를 호의하는 곳 등이다. 이러한 시설은 각각 정궁의 연조, 치조, 외조에 해닫하는 것을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도 이러한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고종 때 중건된 동궁 일곽은 북으로는 편전우측의 자선당에서 남으로는 동십자각 이북과 운방과 계방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중건 계획에서 아주 중요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곧 자선당과 비현각 일곽, 계조당 일곽. 장방과 소주방 그리고 별감방 일곽, 계조당 일곽, 동남쪽 궁장 옆 춘방과 계방 일곽, 춘방 책고와 별군직청 일곽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은 각각 정궁의 연조, 치조, 외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임시-경복궁(빛깔있는 책들)에서 발췌>

자선당은 세자의 공식 활동공간이며,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이다. 이 살던 집이다. 비현각은 그 부속건물이며 세자가 공부를 하던 곳이다.

 
                 동궁인 자선당(資善堂) 

자선당은 세자의 공식 활동공간이며,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이다.

비현각(丕賢閣)-동궁의 부속건물이며 세자가 공부하던곳.
세자를 동궁(東宮)이라 하였다. 세자는 흔히 봄에 비유되었다.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봄부터 결실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오행에 따르면 봄은 동쪽이다. 이 때문에 왕이 거처하는 곳 동쪽에 세자궁을 만들었다. 세자궁을 동궁 또는 춘궁(春宮)이라고 한 것도, 세자 책봉을 봄에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선당과 비현각

동궁에는 자선당과 비현각이라는 두 건물이 있다.

자선당은 세자의 공식 활동공간이며, 세자와 세자빈이 살던 집이다. 비현각은 그 부속건물이며 세자가 공부를 하던 곳이다. .

그 비현각 주위에는 세자를 교육하고 보필하는 업무를 맡았던 세자시강원(춘방)과 세자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세자익위사(계방)이라고 하는 관서 등이 있다.

그 일대는 광화문에서 교태전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중심축, 왕이 계시는 내전의 동쪽에 해당된다. 이곳이 동궁이다.

동궁은 경복궁 궁궐 밖에 있던 것을 세조 연간에 경복궁 안으로 끌어들이었다. 여기서 왕들은 왕자 수업을 받고 왕이 되었다.

동궁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없어질 때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 270여 년 동안 세자들은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이나 서궐 경희궁의 동궁에서 생활하였다.


고종 때

경복궁의 동궁 자선당은 고종 초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당연히 함께 복원되었다. 복원된 자선당에서 세자 노릇을 한 유일한 사람은 순종이다.

그는 부왕 고종을 따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가 있던 시절, 독을 탄 차를 마시고 거의 반편이 되었다.

1907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고종의 뒤를 이어 황제위에 올랐으나, 고종은 그에게 대리청정을 시켰지 황제위를 물려준 것은 아니었는데 일본 통감과 이완용 등 친일반역자들이 대리청정을 선위로 둔갑시킨 것이다.

황제가 된 순종은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적인 역할을 하고 황제에서 "창덕궁이왕" 으로 격하되어 창덕궁에서 죽었다.

그 건물들은 일본인에게 팔려나갔다. 그 가운데 자선당은 오쿠라라는 사람이 가져다가 동경이 자기 뒤 정원에 세우고 '조선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설 박물관으로 삼았다.

슬픈 역사에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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