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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자전일곽(慈殿一廓): 자졍전.홍복전.만경전      목록가기    

자전일곽(慈殿一廓)-자경전.흥복전.만경전⑥ 
 

 자전(慈殿)은 왕의 모친이자 선왕의 비(妃)로 선황 사후에 대비가 된 사람을 가리키는 한편 대비의 처소 곧 대비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경전은 고종때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옛 자미당(紫薇堂)터에 조대비(익종왕비 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로, 고종의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자경전은1867년 준공되었으나 1873년에 불이 나서 1888년(고종 25)에 다시 지었다. 자경전은 정면 10칸, 측면 4칸의 장방형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2칸의 청연루와 정면 6칸, 측면 23칸의 협경당이 잇닿아 있다.

자경전은 경복궁에 남아있는 유일한 침전 건물로, 조선시대 왕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사방에는 행각과 담장이 둘러쳐있는데, 정문은 남행각의 만세문(萬歲門)이다. 높은 기단위에 중앙에는 커다란 대청을 두고 양쪽에 커다란 온돌방을 두었으며 측면에는 누마루를 두고 앞뒤쪽에도 툇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자경전의 후원에는 십장생굴뚝과 꽃담으로 장식하였다.

원래는 자경전일대가 상당히 커다란 규모였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후원의 십장생 무늬 굴뚝과 꽃담이 남아있다.

조대비는 1890년에 아미산 뒤쪽의 한 내전인 흥복전에서 승하하였으므로 흥복전도 자전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자경전 뒤편 깊숙이 자라잡은 만경전도 후궁 일곽에서는 만화당과 함께 가장 규모가 큰 거물로 넓이가 36칸이고 전(殿)인 점으로 보아 대비전으로 헌종 계비 효정왕후의 거처였으리라 짐작된다. 만경전 오른편의 건복합(建福閤)과 뒤편의 만화당, 통화당(通和堂) 등은 만경전을 보좌하는 건물인 듯하다.


대비의 거처는 동조(東朝)라고도 불리는데, <주례고공기>의 삼조가 왕을 중심으로 한 궁궐의 기본 형식 구조임에 대하여 그 동쪽에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비의 거처를 따로 마련한 데서 생겨난 듯하다. 자경전이 왕의 침전과 왕비의 침전 동쪽에 자리잡은 것, 성종때 세 대비를 위하여 창경궁을 창덕궁의 동쪽에 따로 마련한 것에서도 알수 있다. 

 그러나 대비의 거처가 밤드시 궐내 동쪽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현종 때에는 창덕궁에 만수전(만수전)과 집상전(집상전)을 인정전의 서쪽과 동쪽에 각각 건립하였는데, 이는 장락궁(장락궁)을 참조한 중국 한나라의 제도를  따른 거이다.

한편 왕위의 계승이 선위(禪位) 형식으로 이루어지면 선왕은 상왕(上王)이라고 불리며, 정궁 밖에 따로 거처를 마련하였다. 이때 상왕비의 거처가 상왕의 궁전에 있게 됨은 물론이다.
<임시-경복궁(빛깔있는 책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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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경전 꽃담
       

  


  

  자경전 꽃담장은 기초석위에 붉은 벽돌로 몸체를 만들고 기와를 이었는데, 벽면에 전서체의 글자와 줄무늬, 꽃무늬, 나비, 벌, 꽃, 박쥐 등의 문양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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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경전 십장생(十長生) 굴뚝
  

  자경전 십장생(十長生) 굴뚝은 1888년에 만든 것으로 넓이 381센티, 높이 236센티, 두께 65센티이다.

담장의 한면을 앞으로 돌출시켜 벽돌로 굴뚝을 만들어, 기와지붕을 얹고 벽면 중앙에 회를 발라 화면을 구성하여 십장생 무늬를 배치하였다. 아랫부분에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동물그림벽돌을 좌우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장방형으로 구획하여 해,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노초, 포도, 대나무, 국화, 새, 연꽃 등을 넣었다. 윗부분에는 용그림벽돌을 중심으로 양쪽에 학그림벽돌을 배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하면서도 꽃담장으로서의 조형미도 살려 조선 궁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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