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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건청궁(乾淸宮)과 집옥재(集玉齋)             목록가기          

 건청궁 지역

       건청궁 옥호루

향원정 북쪽에 건청궁이 있었다. 고종은 관료도 모르고, 흥선대원군 조차도 모르게 이곳에 건청궁을 지었다.

건청궁은 경복궁 가장 뒤편에  있던 궁으로, 1873년(고종 10)에 지은 건물이다. 고종이 고위관료는 물론 흥선대원군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짓다가 건립사실이 알려져 반대의견이 빗발쳤지만 고종의 강력한 의지로 지은 궁이다. 1894년(고종 31)에 고종은 창덕궁에서 돌아와 건청궁에 거주했다.

일제는 1929년 건청궁 일대의 건물을 허물어 버리고 1939년에 미술관을 지었다. 지금은 명성황후 순국숭모비(明成皇后殉國崇慕碑)와 명성황후 조난지지비(明成皇后遭難之地碑)가 있다. 현재 건청궁의 서쪽에는 건청궁의 부속건물인 집옥재(集玉齋) . 협길당(協吉堂)이 남아있다.

 

        

                  명성왕후가 살해된 건청궁 옥호루.

                      

                             명성황후 조난지비

  일제는 1929년 건청궁 일대의 건물을 허물어 버리고 1939년에 미술관을 지었다. 지금은 명성황후 순국숭모비(明成皇后殉國崇慕碑)와 명성황후 조난지지비(明成皇后遭難之地碑)가 있다.
   

  명성왕후가 살해된 방(왼쪽)과 왕후의 시신을 불에 태운 곳(오른쪽).

  건청궁은 고종왕비 명성왕후가 일본인의 손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현장이다.

1894년에 고종은 창덕궁에서 돌아와 건청궁에 거주했는데, 1895년 일본인들은 명성왕후를 제거할 이른바 "여우사냥"이란 작전을 세웠다.1895년 8월 20일 일본공사 미우라가 이끄는 일본군, 일본낭인 등은 건청궁까지 난입하여 부속건물인 곤령합(坤寧閤)에서 명성왕후를 끌어내어 칼로 찔러 시해하고, 시신을  그 옆 녹산으로 끌고가 석유를 끼얹어 태우고는 그 뼈를 그 앞 연못에     던져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명성왕후는 1897년(광무 1)에 명성황후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처음 청량리 홍릉에 장사하였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경기도 금곡의 홍릉으로 이장하였다. 이 비는 1954년 6월 30일 건립한 것으로,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란 글씨는 이승만 당시대통령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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