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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부 사적지대
경주 월성(月城) 

 
경주 동부 사적지대
 동부 사적지대는 동서는 안압지로부터, 북으로는 반월성(半月城) 남쪽의 남천(南川)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瞻星路)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신라 왕도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반월성(半月城) 안압지, 첨성대, 계림(鷄林) 등 중요한 사적(事蹟)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물왕(奈勿王)을 위시한 수십기(數十基)에 달하는 고신라(古新羅)시대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 이 일대의 면적은 202,46평이다.

  
  

 

경주 월성(月城)
 월성(月城)은 경주의 심장부인  남천邊(南川邊)에 있으며, 지형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반월성(半月城)이라고도 부른다. 신라 왕가의 석씨(昔氏) 시조(始祖)인 탈해왕(脫解王)이 임금자리에 오르기 전에 살던 곳이었는데, 임금이 된 후에도 왕궁(王宮)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5대 임금인 파사왕(婆娑王) 22년(A.D.101년)에 이 성을 궁성으로 크게 축성(築城)한 후 금성(金城)에서 이 곳으로 이사하였다. 이렇게 궁성으로 이용되던 반월성은 신라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敬順王)까지 약 900년간 신라를 다스리던 곳이었다

 
  이 성의 이름은 생긴 모양이 초생달 같다고 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月城)이라고 하며, 임금이 계시는 곳이라는 뜻에서 재성(在城)이라 불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반월성(半月城)이라 부르고 있다. 지금은 화려하고 장엄하던 대궐들은 간 곳 없고 빈 터만 남아 있으나, 옛 기록을 더듬어 보면 성문(城門)으로서는 남문(南門), 북문(北門), 귀정문(歸正門), 임해문(臨海門), 현덕문(玄德門), 무평문(武平門), 준례문(遵禮門) 등이 있었고, 49대 헌강왕(憲康王)이 신하(臣下)들과 더불어 서울 장안을 굽어 보며, 태평성세를 부르던 월상루(月上樓)와 망은루(忘恩樓), 고루(鼓樓)등의 누각들, 그리고 임금님께서 신하들과 정사(政事)를 논의하던 조원전(朝元殿), 숭례전(崇禮殿)을 위시(爲始)하여 많은 전각들이 처마를 맞대어 있었다 한다.

참고문헌 : 신라의 얼(내고장 전통가꾸기), PP. 307∼308.
찾아가는길: 경주시내에서 불국사 방면(울산방면) 버스를 타고 국립경주박물관 앞에서 하차한 후 시내쪽으로 되돌아 5m 정도 걸어나오면 왼쪽 방향에 능선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반월성이다. 경주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불국사 방면(울산방면)으로 2km 가량 가면 오른쪽 방향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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