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강릉(泰康陵:중종계비尹씨의 태릉과 11대명종(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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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를 모신 태릉과 그분들의 아들과 며느리가 되는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를 모신 강릉을 합하여 태강릉이라고 한다. 태릉은 태릉푸른동산과는 철조망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강릉은 이곳에서 동북방향으로 90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으나 이 강릉은 현재 원형보존을 위해 비공개 능으로 지정되어 있다. 명종의 능인 강릉이 생모 문정왕후와 능의 위치에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능이라면, 비록 비 공개릉이라고는 하나 태릉 입구에라도 강릉(康陵)에 대한 보다 자세한 안내나 설명이 필요하리라 사료된다.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은 단릉형식으로 조성되어 있고, 동북쪽에 있는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은 동원이강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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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中宗)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1501-1565)의 태릉(泰陵)은 명종(明宗)의 강릉(康陵)과 함께 태강릉(泰康陵)으로 불리우면서 주변의 태릉푸른동산, 태릉선수촌 등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다. 재위 1년을 못넘긴 인종(仁宗)에 이어, 아들 명종(明宗)이 왕위에 오르면서 그의 생모(生母)였던 문정왕후가 권력을 움직였기 때문에 사후(死後)의 능역 조성 역시 웅장하고 화려하게 이루어 졌으리라. 유난하게 거대한 석인(石人)의 얼굴과 병풍석(屛風石)에 새겨진 구름 문양, 그리고 십이지 신상(十二支身像) 등은 당대 권력의 힘을 느끼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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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왕후 윤씨는 1501년(연산군 7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의 딸로 태어나 17세{중종 12년}에 왕비에 책봉되었고, 중종(中宗)과의 슬하에 명종(明宗)과 네 공주를 두었다.
더욱이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명종(明宗)을 대신해 8년간이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기에 권력의 최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8년간 계속되는 수렴청정 기간에 윤원형(尹元衡) 등 척신(戚臣)이
정권을 장악하여 국사를 농단(壟斷)하였다. 그래서 중종과 능역을 함께 조성하기 위해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陵;西三陵 所在) 옆에 있었던 중종의 정릉(靖陵:)을 "수파(水破:수구)가 불길(不吉)하다" 는 풍수설(風水說)을 이유로, 성종(成宗)의 선릉(宣陵) 가까이 있는 봉은사(奉恩寺) 곁으로 옮겨 놓았지만 낮은 지대로 인해 자주 침수되어 문정왕후 자신은 결국 그곳에 묻히지 못하고 현 위치로 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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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푸룬동산 | |
상무대와
선수촌으로 널리 알려진 태릉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자연적 여건이나 뻥 뚫린 교통여건 등의 그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 위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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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장 건물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사격장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후문 방향과 클레이 사격장 방향으로 나뉜다. 후문은 대부분의 경우 굳게 닫혀 있으니 당연히 위로 발길을 돌리는데, 이곳의 백미(白眉)는 클레이 사격장까지 들어가는 500여 m의 길이다. 좌우로 나무들이 빽빽하고 도로는 한적하다. 길의 초입 부분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과 원숭이 우리가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면 반드시 이 곳을 먼저 들러야 한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분위기 좋은 벤치가 군데군데 놓여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곳에서 도시락을 까먹어도 좋고 한담을 나누며 데이트를 즐겨도 좋다. 길을 따라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난데없는 총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데 놀라지 않아도 된다.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이 분명하니까. 다 올라가면 클레이 사격장이 보이고 여기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도 있다. 이 곳에는 영화나 TV 속에서 보았던 사격장이 펼쳐져 있다. 만일 운이 좋다면 관중석에 느긋하게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선수들이 사격하는 모습을 즐길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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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3대 명종릉 | 명종릉에 배치된 석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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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조성되었고, 두 능의
봉분에는 모두 병풍석(屛風石)을 두르고 난간석(欄干石)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좌우측 무인석(武人石)의
외형이 서로 다르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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