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답산안내 2002/4/11이후 방문

풍수지리 답산안내

 

동구릉(東九陵)    6대단종(莊陵), 단종비 송씨(사릉:정순왕후)
서오릉(西五陵)  7대세조(광릉:세조와 비 정희왕후 윤씨)
서삼릉(西三陵) 9대성종(선릉), 11대중종(정릉), 중종비 신씨(愼氏:온릉)
영녕릉(英寧陵:세종의 英릉과 효종의 寧릉 10대연산군묘, 15대 광해군묘
공순영릉(恭順永陵:8.9대 왕비와 영조의 장자) 태강릉(泰康陵:중종계비尹씨의 태릉과 11대 명종(강릉)
융건릉(隆健陵:사도세자의 융릉과 정조의 건릉)   원종(인조생부 추존왕:章陵), 16대인조(長陵)
2대정종(후릉), 3대태종(헌릉), 23대순조(인릉)  홍유릉(洪裕陵:26대 고종의 홍릉과 27대 순종의 유릉)

 

 
  조선왕릉 답산안내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과거의 문화유산으로 자랑하는 것은 궁궐의 향훈(香薰)과 종교 미술과 그리고 묘장제도(墓葬制度)의 여운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에 풍수지리학이나 혹은 인문지리학을 무시한 민족은 없다.

   왕궁, 사찰, 성당, 묘지 등은 풍수학이나 인문지리학에 의거(依據)한 승지(승지)를 택했기 때문에 자연 경관이 볼만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 왕조의 역대 왕들이 묻혀 있는 왕릉을 답산해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조선조(朝鮮朝)의 왕릉(王陵)은 외형적 특징만 보아도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반증(反證)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의 대상이 된다.  27대 왕(王)과 왕비(王妃) 및 계비(繼妃),   그리고 추존(追尊)된 왕들을 포함해 전체 44기의 능(陵)이 조성되어 있다. 이 중 태조(太祖) 비(妃)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제릉(齊陵)과 정종(定宗)과 비(妃) 정안왕후(定安王后)를 모신 후릉(厚陵)만 북한 지역인 개성시에 있어 아직은 답사할 수 없는 지역에 있으며,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에 조성된 단종(端宗)의 장릉(莊陵)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근교와 수원.여주지역에 있다.
                                                           <위의사진 11대 중종의 정릉>서울 강남구 삼성동 135-4

특히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 건원릉(태조), 현릉(문종), 목릉(선조), 휘릉(인조 계비), 숭릉(현종), 혜릉(경종 비), 원릉(영조), 수릉(익종-추존), 경릉(헌종))이나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 경릉(덕종-추존), 창릉(예종), 명릉(숙종), 익릉(숙종 비), 홍릉(영조 비)), 서삼릉(西三陵 : 희릉(중종 계비), 효릉(인종), 예릉(철종))은 왕릉군(王陵群)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한,두번 정도는 답사(踏査)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관람이나 사진촬영 정도로는 왕릉의 참모습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왕릉의 참모습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는 몇가지 기본적인 정보를 살펴본후, 왕릉여행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1. 왕릉의 정문 홍살문(紅--門)
   
   능역(陵域)의 입구(入口)에는 홍살문(일명홍문;紅門)이 있는데, 홍살문은 궁전(宮殿), 관아(官衙), 능(陵), 원(園:세자나 대군, 공주 등의 묘)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門)이다. 한자로는 홍전문(紅箭門)이라 하는데, 30자 이상의 둥그런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는 붉은 살을 쭉 박았다.
  또한 홍살문 우측에는 왕이 제례(祭禮) 시에 홍살문 앞에서 내려 절을 하고 들어가는 배위(拜位)가 있다.
  능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홍살문을 지나면 왕릉의 참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역사 속의 왕릉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아마도 우리의 존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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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릉(현종:18대)입구의 홍살문.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2. 능으로 가는 길 참도(參道)
    

  홍살문을 지나면 정자각(丁字閣)에 이르기까지 긴 돌길인 참도(參道)가 펼쳐져 있다. 참도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왼쪽 부분은 한 단을 높게 만들었고 , 오른쪽 부분은 단을 낮게 만들었다. 이유는 신령(神靈)이 다니는 좌측의 신로(神路)부분과 사람이 다니는 우측의 인로(人路)부분을 분리해 놓은 것이다.
   

  삼각형 모양이나 사각형의 얇은 돌[박석(薄石)]을 깔아 반듯하게 조성해 놓은 참도는 왕릉의 신성함을 배가(倍加)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릉(인조와 정비 인열왕후 한씨)참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우리는 지금 왕릉(王陵)의 참도(參道)를 걸을 기회가 있을 때, 까닭이야 어떻든 간에 옛 왕릉참도의 관습을 떠올리며 오른쪽 인도 쪽으로 걸어보는 것도 왕릉여행의 훌륭한 추억 꺼리가 아닐까 한다.

 

 
  3. 왕릉의 예를 다하는 정자각(丁字閣)과 부속 건물(建物)
   
    정자각(丁字閣)은 왕릉(王陵)이나 원(園)의 바로 앞에 있는 정<丁>자형의 제전(祭展)으로 건물 형태가 '정(丁)'자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정자각 내에는 왕의 위패를 조각해 두었으며, 제사 때 이곳에 제물을 진열하고 제사를 지냈는데,오향제(五享祭)나 한식제(寒食祭)를 지내왔다. 정자각의 앞 동서 양쪽에 수복방(守僕房).수라방(水刺房)이 있고, 다시 동쪽에 비각(碑閣)을 조성했는데,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 비각(碑閣)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정면 3칸과 측면 1-2칸 정도이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훼손된 곳이 많지만 비각(碑閣) 아래로 재실(齋室)이나 고방(庫房) 등의 부속 건물을 두고 있다. 

  정릉(중종:11대 단릉) 강남구 삼성동 135-4

  정자각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정자각은 제향(祭享)을 하는 곳이므로 제례(制禮) 의식(儀式)에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고 서쪽으로 내려오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의 의례(儀禮)를 따랐다.  실제로 정자각(丁字閣)에서부터 봉분(封墳)까지는 심한 경사(傾斜)의 사초지(莎草地)가 있어 봉분(封墳)까지는 직접 볼 수가 없으며, 정자각 뒤 높은 곳에 위치한 봉분까지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야만 비로서 왕릉을 관람할 수 있다. 

   

 
  4.능원(陵原)의 전형적 모습들
   
     왕릉(王陵)의 모습은 각각의 능마다 특징적인 면을 지니고 있지만 사초지(莎草地)를 거슬러 올라와 봉분(封墳)이 있는 능원(陵原)의 전형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봉분(封墳) 자체만 조성된 능이 많지만 봉분 밑을 12각의 병풍석(屛風石)으로 둘러 봉분(封墳)을 보호(保護)하는 호석(호석)을 준 경우가 있고, 데체적으로 봉분 주위는 다시 난간석(欄干石)으로 둘러 보호하고 있는 능들이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을 두고 상석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 한 쌍을 두었으며, 한 단 아래 중앙에는 상징적 등불인 장명등(長明燈)을 두었습니다.

  원릉(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쌍릉). 구리시 인창동
    봉분의 동.서.북 3방에는 담장인 곡장(曲墻)을 두르고, 봉분의 난간석(欄干石) 바깥쪽에서 곡장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으로 4마리씩의 석호(石虎)석양(石羊)을 서로 엇바꾸어 배치하였는데, 이들은 능을 호위하는 수호신(守護神) 격으로 삼았다.{추존(追尊)된 왕릉(王陵)의 경우는 석호, 석양의 수를 반으로 줄여 일반 왕릉과 차이를 둔 경우도 있다.}

 봉분 앞 장명등(長明燈)의 한 단 아래에는 관(冠)을 쓰고 홀(笏)을 쥐고 있는 문인석(文人石) 1쌍, 그 아래 단에는 갑옷에 검을 들고 있는 무인석(武人石) 1쌍을 세우고, 이 문무의 석인(石人)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여 마치 문.무인이  각각 석마를 거느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성립 후 조성된 고종[홍릉(洪陵)]과 순종[유릉(裕陵)]의 경우는 황제릉(皇帝陵)의 형식으로 조성되어 기존의 능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5. 왕릉 배치상의 형식
  봉분(封墳)배치에 따른 왕릉의 형식은 다음과 같이 5종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첫째는 왕이나 왕비의 봉분을 별도로 조성한 단독(單獨)의 형태인 단릉(單陵)[태조의 건원릉 등] 형식이 있고,
 둘째는 한 언덕의 한 혈판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좌우로 나란히 마련한 쌍릉(雙陵)[정종의 후릉 등] 형식,
 셋째는 한 언덕에 왕과 왕비, 계비의 세 봉분을 나란하게 배치한 삼연릉(三連陵)[헌종의 경릉] 형식,
 넷째는 하나의 정자각(丁字閣) 뒤로 한 언덕의 다른 줄기에 각각 따로따로 봉분(封墳)과 상설(常設)을 배치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문종의 현릉 등] 형식,
 다섯째는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합장릉(合葬陵)[세종의 영릉 등] 형식이 있다.
 이 밖에 한 언덕의 좌우 다른 줄기가 아닌 한 줄기에 상하(上下)나 남북으로 비스듬하게 배치한 특이한 형식의 동원이강릉의 변형(變形)[효종의 영릉 등] 형식도 있다.

쌍릉과 동원이강릉의 구분기준은 곡장의 개수로 구분한다.
아무리 가깝게 붙어있어도 곡장이 2개이면 동원이강릉이고, 좀 떨어져 있어도 곡장이 한 개이면 쌍릉이 된다.

     
 
  단릉(單陵)[태조의 건원릉] 쌍릉(雙陵)[정종의 후릉]
     
 
  삼연릉(三連陵)[헌종의 경릉]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세조의 광릉]
     
 
  합장릉(合葬陵)[세종의 영릉] 동원이강릉의 변형(變形)[효종의 영릉<寧陵>]
     

 
 

  우리는 이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왕릉(王陵)여행을 출발하려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는 한가지 확인해 두어야 할 우리의 마음가짐 있다.
 흔히들 우리는 문화유산(文化遺産)에 대해 외국과 단순비교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예컨데,중국(中國)의 왕릉과 단순비교를 통해 우리 것을 보잘것없고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문화적(文化的)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빠지는 오류를 범한다고 하겠다.
  우리는 반만년(半萬年)의 유구한 역사(歷史)를 간직한 자랑스런 문화민족(文化民族)이다. 그 속의 문화(文化)와 전통(傳統)을 우리는 자긍심을 갖고 가꾸고 보존할 때 비로서 진정한 우리의 문화가 세계 속에 뿌리 내릴 수 있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선시대 왕실묘의 구분
    능(陵), 원(園), 묘(墓) - 왕실(王室)의 위계에 따라 그 명칭을 다르게 정함.
     능(陵) 제왕(제왕)과 후비(후비)의 무덤.
     원(園) 왕의 사친(私親), 왕세자와 그 빈(嬪;왕세자의 정부인<正夫人>)의 무덤. 

사친(私親): 종실(宗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生家) 어버이.

   묘(墓) 대군(왕의 정궁<正宮>의 아들), 군(왕의 서자<庶子>), 공주(왕의 정궁<正宮>의 딸), 옹주(왕의 서녀<庶女>), 후궁(왕의 첩), 귀인 등의 무덤.
 
 장례절차
왕실에서 국상을 당하면 곧 빈전(殯殿), 국장(國葬), 산릉도감(山陵都監)을 설치하고 장례준비를 하게 된다.
 
  빈전도감  국장이 났을 때,장례일까지의 염습,성빈,성복 등 빈전에 관한 일을 맡아보기 위하여 나라에서 임시로 설치하던 관청.

 빈전(殯殿)은 발인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殿閣)

  국장도감  임금이나 왕비의 장례를 행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임시로 설치한 관청. 

장도감이 관장하는 의절은 재궁(梓宮),거여(車輿), 책보(冊寶;옥책과 금보), 복완(服玩), 능지(陵誌), 명기(明器), 길흉(吉凶), 의장(儀仗), 상유(喪유), 포연(鋪筵) 제기(祭器), 제전(際奠), 반우(返虞) 등의 의식과 절차이다.

 산릉도감  임금이나 왕비의 능을 새로 만들 때 임시로 설치하던 관청.현궁과 정자각,비각,재실 등 봉분조성과 부대시설에 관한 일을 맡았음.
 
 도감(都監) :  고려조와 조선조 때 국장(국장),국혼,궁궐 축조 등의 중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를 처리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임시로 설치하던 관청. 대개 현직의 관리가 겸직하여 사무를 처리햇음.
 염습(殮襲)  죽은 사람을 몸을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염포(殮布)로 묶는 일.
 성빈(成殯) 빈소(발인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를 마련 혹은 만듦.
 성복(成服) 초상이 난 뒤에상주(喪主)와 복인(服人)들이  처음으로 상복을 입는 일. 
 명기(明器) 장사 지낼 때 무덤 속에 시체와 함께 묻는 식기,악기,즙기,무기 등 여러 가지 기물
 의장(儀仗) 의식에 쓰는 무기 또는 물건
 제기(祭器) 제사 때에 쓰이는 그릇. 유기(유기).사기(사기).목기(목기) 등이 있음.
 제전(際奠) 제사의 공물(供物)
 반우(返虞) 장사 지낸 뒤에 신주를 집으로 모셔 오는 일
  빈전(殯殿) 국상이 났을 때 발인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殿閣).
  책보(冊寶) 옥책<玉冊>과 금보<金寶>). 

 옥책:임금이나 왕비에게 존호를 올릴 때에 그 덕을 칭송하는 글을 새긴 간책(簡策). 옥책문: 임금 이나 왕비의 존호를 올릴 때 옥책에 새긴 송덕문.

  재궁(梓宮) 왕이나왕비의 관(棺).임금이나 왕후의 관을 높이어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임.
  
 능 조성과 풍수지리설
 

  능역(陵域)의 택지(擇地)와 능역(陵域)의 역사(役事)는 대략 3개월에서 5개월 정도 걸렸으며, 능역(陵役)에 동원된 인원은 6,000명 내지 9,000명이라고 기록에 전한다.
 
 택지는 상지관(相地官)이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길지(吉地)를 답산한 후, 추천에 따라 결정하며, 때로는 왕이 친히 현지에 나아가 지세를 관망한 뒤에 결정하기도 했다.

  택지 :좋은 땅을 고름 / 능역(陵役): 능에 관한 역사(役事;토목이나 건축 등의 공사).  

  상지관:조선시대 관상감의 한 벼슬. 대궐자리, 능자리 등의 지상(地相)을 보는 벼슬아치.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명당이란 배산임수한 지형에 용맥의 생기가 흐르다가 어느 지점에 멈추어 응결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릉의 산세를 살펴보면 주산(主山)을 뒤로 업고, 그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좌우는 청룡, 백호의 산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案山)을 바라보는 것이 표준형이다.
 이 산세 안의 명당에 생기가 응결되어 있는 곳을 혈(穴)이라고 하는데, 이 혈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

  능은 좌향(坐向)을 중요시한다. 좌(坐)란 혈의 중심이 되는 곳이고, 좌의 정면이 되는 방향이 향(向)이다. 왕릉의 좌향을 보면 대부분 북에서 남으로 향한 곳이 많고, 산세에 따라서는 서향 내지는 북향을 취한 것도 있기는 하다.

  주산:묘터나 집터 또는 도읍터의 뒤쪽에 있는 산으로 터를 진호(鎭護)하는 역할을 한다.

 안산:집터나 묘터의 전면에 있는산. 청룡,백호,주산과 함께 풍수학상의 네 요소의 하나이며, 안산 너머에 중첩하여 있는 여러산들은 조산(朝山)이라 하여,안산과 구별하여 칭한다.

  원(園)과 묘(墓)는 봉분, 곡장, 상석, 정자각, 재실 등 대부분은 능과 같이 갖추고 있으나 왕릉보다는 규모가 작고, 봉분 밑에 병풍석과 난간석, 무인석이 생략되었다.

  조선시대에는 27대의 왕과 왕비릉, 또 추존왕릉까지 모두 44기의 능이 조영되었다.
 이 중에서 북한에 있는 태조의 비 신의왕후의 제릉, 정종 양위의 후릉, 그리고 여주에 있는 세종 양위의 영릉, 효종 양위의 영릉, 단종의 영월 장릉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 근교에 산재해 있다.
 

능의 형식은 분묘조성 형태에 따라 단릉(單陵), 쌍릉(雙陵), 삼연릉(三連陵),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합장릉(合葬陵)으로 나뉜다.
 

단릉

왕이나 왕비 중 어느 한 분만을 매장하여 봉분이 하나인 능

쌍릉

왕과 왕비를 하나의 곡장 안에 모셔 봉분이 나란히 2기로 조성된 능

삼연릉

왕, 왕비, 계비 등 세 분의 봉분 3기를 나란히 조성한 능

동원이강릉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기 한기씩 조성한 능

합장릉

왕과 왕비의 관을 함께 매장하여 한 개의 봉분으로 조성한 능

  • 쌍릉과 동원이강릉의 구분기준은 곡장의 개수로 구분한다.
    아무리 가깝게 붙어있어도 곡장이 2개이면 동원이강릉이고, 좀 떨어져 있어도 곡장이 한 개이면 쌍릉이 된다.

 

 

 왕릉 구조배치의 표주형식  모든 왕릉이 아래와 같은 구조로 배치된 것은 아니나, 표준형식으로 왕릉의 배치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 표준 구조를 알고 개별 왕릉자료를  알고 계시면, 왕릉답산 때 충분히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단

 

 

 

 

 

 

 

 

 

 

 

 

 

 

 

 

 

 

 

 

 

 

 

 

 

 

 

 

 

 

석양

 

석호

 

석양

 

석호

 

 

 

 

 

 

 

 

 

 

 

 

 

 

 

 

 

 

 

 

 

석호

 


병풍석 / 난간석

 

석양

 

 

 

 

 

 

 

 

 

 

 

 

 

 

 

 

 

 

석양

 

 

석호

 

 

 

 

 

 

 

 

 

 

 

 

 

 

 

 

 

 

 

 

 

망주석

 

 

상석

 

 

망주석

 

 

 

 

 

 

 

 

 

 

 

 

 

 

 

 

 

 

2단

 

 

석마

 

문인석

 

 

장명등

 

 

문인석

 

석마

 

 

 

 

 

 

 

 

 

 

 

 

 

 

 

 

3단

 

 

석마

 

무인석

 

 

 

 

 

무인석

 

석마

 

 

 

 

 

 

 

 

 

사초지

 

 

 

 

 

 

 

 

 

 

 

 

 

 

 

 

 

비각

 

 

 

 

 

 

 

 

예감

 

 

정자각

 

 

 

 

 

 

 

 

 

 

 

 

 

 

 

 

 

수복방

 

 

 

 

 

 

 

 

 

 

 

참도

 

 

 

 

 

 

 

 

 

 

 

 

 

 


홍살문

배위

 

 

 

 

 
조선 왕릉 상설도
  능원은 장대석으로 3단계로 구분되며, 그 중 초계라고도 부르는 가장 높은 상단에는 승하한 왕의 침전이라는 능침이 자리하는데, 능침 주변3면에는 곡장이라 하는 돌담들이 조성되어 있다. 곡장 안에는 석호와 석양들이 능침을 호위하고 능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왕릉 봉분을 병풍처럼 사대석이 휘두르고 있기에 이를 흔히 병풍석이라 하기도 한다.
  병풍석 외곽을 다시 휘두르는 난간석과 병풍석은 초기 조선 왕릉 양식의 특징이었으나, 제7대 때부터는 풍수상 이유에서 병풍석을 생략한 난간석 왕릉들이 전통 왕릉의 양식으로 내려오게 된다. 곡장으로 둘러싸인 능침 가장 앞쪽 양편에는 각각 망주석이 세워져 있으며, 
조선왕릉 석물설명도
 봉분 앞에 있는 혼유석인 석상은 혼령이 앉는 의자라는 용도를 담당하고 있다. 조선왕릉 능역 밖에는 왕릉을 관리하는 재실을 두어 종9품 참봉과 함께 다수의 인원을 상주시켜 놓았다. 

 이때 왕릉 관리를 근처의 사찰을 지정하여 운영하게도 했으며, 해당 사찰은 원찰로 불려졌고 건원릉의 개경사(지금은 흔적도 없다), 정릉의 흥천사, 영릉의 신륵사, 광릉의 봉선사, 정릉의 봉은사 등의 원찰들은 숭유배불이라는 조선왕조 당시에도 선비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만큼 권력을 지녔다

 

 

 

사진으로 보는 조선왕릉 배치와 석물

 

 

 

능호

묘호

형식

사적

주소

1대

건원릉
제릉
정릉

태조
신의왕후 한(韓)씨
신덕왕후(계비) 강(康)씨

단릉
단릉
단릉

193

208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개성시 판문군 상도리 (북한)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산 87-16

2대

후릉

정종
정안왕후 김(金)씨

쌍릉

 

개성시 판문군 령정리 (북한)

3대

헌릉

태종
원경왕후 민(閔)씨

쌍릉

194

서울 강남구 내곡동 산 13-1

4대

영릉

세종
소헌왕후 심(沈)씨

합장

195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

5대

현릉

문종
현덕왕후 권(權)씨

동원이강

193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6대

장릉
사릉

단종
정순왕후 송(宋)씨

단릉
단릉

196
209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121-1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 산 65 

7대

광릉

세조
정희왕후 윤(尹)씨

동원이강

197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47

8대

창릉

공릉

예종
안순왕후(계비) 한(韓)씨
장순왕후(정비) 한(韓)씨

동원이강

단릉

198

205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1 (서오릉)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봉일천리 산 5-1

추존

경릉

덕종
소혜왕후 한(韓)씨

동원이강

198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1 (서오릉)

9대

선릉

순릉

성종
정현왕후(계비) 윤(尹)씨
공혜왕후(정비) 한(韓)씨

동원이강

단릉

199

205

서울 강남구 삼성동 135-4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봉일천리 산 15-1

10대

연산군묘

연산군
부인 신씨(愼氏)

쌍분

362

서울 도봉구 방학동 산 75번지

11대

정릉
온릉
희릉
태릉

중종
단경왕후(정비) 신(愼)씨
장경왕후(계비) 윤(尹)씨
문정왕후(계비) 윤(尹)씨

단릉
단릉
단릉
단릉

199
210
200
201

서울 강남구 삼성동 135-4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 산 19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산 37-4 (서삼릉)
서울 도봉구 공릉동 산 223-19

12대

효릉

인종
인성왕후 박(朴)씨

쌍릉

200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산 37-1 (서삼릉)

13대

강릉

명종
인순왕후 심(沈)씨

쌍릉

201

서울 노원구 공릉동 산 223-19

14대

목릉

선조
의인왕후(정비)
박(朴)씨
인목왕후(계비) 김(金)씨

동원이강

193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15대

광해군묘

광해군
부인 유씨
柳自新의 딸

쌍분

363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 산 59번지

추존

장릉

원종
인헌왕후 구(具)씨

쌍릉

202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풍무리 산 141-1

16대

장릉

휘릉

인조
인렬왕후(정비) 한(韓)씨
장렬왕후(계비) 조(趙)씨

합장

단릉

203

193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갈현리 산 25-1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17대

영릉

효종
인선왕후 장(張)씨

쌍릉

195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

18대

숭릉

현종
명성왕후 김(金)씨

쌍릉

193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19대

명릉


익릉

숙종
인현왕후(계비) 민(閔)씨
인원왕후(2계비) 
          인경왕후(정비) 김(金)씨

쌍릉

단릉
단릉

198


198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1 (서오릉)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1 (서오릉)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1 (서오릉)

20대

의릉

혜릉

경종
선의왕후(계비) 어(魚)씨 
단의왕후(정비) 심(沈)씨

쌍릉

단릉

204

193

서울 성북구 석관동 1-5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21대

원릉

홍릉

영조
정순왕후(계비) 김(金)씨
정성왕후(정비) 서(徐)씨

쌍릉

단릉

193

198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4 (서오릉)

추존

영릉

진종
효순왕후 조(趙)씨

쌍릉

205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봉일천리 산 15-1

추존

융릉

장조
경의왕후 홍(洪)씨

합장

206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1-1

22대

건릉

정조
효의왕후 김(金)씨

합장

206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1-1

23대

인릉

순조
순원왕후 김(金)씨

합장

194

서울 강남구 내곡동 산 13-1

추존

수릉

익종
신정왕후 조(趙)씨

합장

193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24대

경릉

헌종
효현왕후9정비) 김(金)씨
효정왕후(계비) 홍(洪)씨

삼연릉

193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번지 (동구릉)

25대

예릉

철종
철인왕후 김(金)씨

쌍릉

200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산 37-1 (서삼릉)

26대

홍릉

고종
명성황후 민(閔)씨

합장

207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 141-1

27대

유릉

순종
순명황후 민(閔)씨
순정황후 윤(尹)씨

합장

207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 141-1

 

 
 왕릉의 구조용어 해설

  능상    봉토와 사초를 가리키는데 민간에서는 봉문분상무덤 이라함.
  장명등    사찰의 석등을 모방한 것으로 형식상 불을 밝히는 곳.
  예감    상릉제례를 마친후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는 곳으로 정자각 북서쪽에 위치.
  산신석    산릉제례후 산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으로 정자각 북동쪽에 위치.
  정자각    정자형의 맞배집으로 제관들이 산릉제례를 지내는곳. 궁궐의 연침을 모방하여 정자각을 침전이라고도함.
  비각    비갈을 보호하는 집으로 정자각 동쪽에 있으며 왕과 비의 이대기가 써있음.
  서계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려 오르내리는 장소.
  신계    신도를 통과한 후 정자각으로 오르는 영혼의 계단.
  동계    제관들이 산릉제례를 하기 위해 오르내리는 계단.
  수복방    능지기들이 능역을 청소하기 위하여 정자각 동편에 지은집.
  신도    영혼이 신문을 통과하여 걸어 들어가는 길로서 어로보다 약간 높음.
  어로    임금이 영혼을 염신하여 모시고 들어가는 길.
  참배석    신도와 어도 양족에 넓은 박석으로 깔아놓았는데 궁궐이 정전에서 조회하는 것을 모방하여 정자각 동쪽은 문관이 서쪽은 무관과 종친들이 4배하는 자리.
  망료위    사헌부 감찰이 예감에서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는 것을 감시하는 곳으로 망례위라고도 함.
  신문    궁궐의 대문을 모방한 영혼이 출입하는 문으로, 통문 또는 홍살문이라고도 함.
  금천교    궁궐의 금천교를 모방하여 석축으로 축조한 다리로서 내금천교와 외금천교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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