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설날        목록가기     

 

 
설날의 풍속-   {8}모아둔  [머리카락 사르기]  
{1}새로 옷을 지어 입는 [설빔]   {9}재앙 물리치는 [세화] 
{2}제사지내는 [차례] {10}예의를 갖추는 [문안비]
{3)정월 차례 뒤에 마시는 [도소주] {11}세찬과 세주  [세찬과 세주]
{4}조상꼐 인사드리는 [성묘] {12}액운이 든 삼년. [삼재법]
{5}덕담을 나누며 [세배] {13}새해 처음 듣는 소리. [청참]
{6}1년 복을 사는 [복조리] {14}경로사상에서 나온 풍습. [상치세전]
{7}신을 훔쳐가는 [앙괭이] {15}승려의 [법고]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설날은 새 해의 첫 날로, 매년 음력 1월 1일이다. 설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 해를 맞아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해를 설계하는 명절이다.

 설날은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맞았다. 이 날에는 조상의 덕을 추모하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뜻으로 차례를 지냈으며, 차례 뒤에는 세배와 성묘를 하였다.

 또한 한 해의 운수가 그 해의 첫날인 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믿어,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정초에 행하는 세시풍속은 한 해의 안녕과 화목을 기원하고, 화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정월 초하룻날은 아침 일찍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은 가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홍동백서 ·어동육서 · 좌포우혜 등의 원칙에 따라 상위에 음식을 차린다.

 차례가 끝나면 웃어른께 새해 인사인 세배를 드리며, 친척과 이웃 어른들께도 찾아가 세배를 한다. 또한 정초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집안의 안녕을 빌며 성묘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으나,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초에는 본래 사흘 간 일을 하지 않고 쉬는데, 이는 조선조부터 내려온 것으로 그 동안 가족과 이웃 간의 우의를 다지고, 길흉을 점치거나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지낸다. 그 중 복(福)을 기원하는 풍속으로는 복조리 · 야광귀쫓기 · 삼재면하기 등이 있는데, 집집마다 방과 부엌에 매달아 놓은 복조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토정비결은 가장 일반적인 길흉진단법으로 정초만 되면 쉽게 풀이한 책자들이 출간돼 요즘에도 심심풀이로 쉽게 읽힌다.

  이 때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즐기는게 윷놀이이다. 이 밖의 놀이로 남자들은 연날리기 · 제기차기, 여자들은 널뛰기 등을 즐겼다.

 
1.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두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이란 본래 <섧다>,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한 해가 바뀌어 새해의 첫날인 정초가 설날이므로,  이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는 섧고 낯설기 때문에 새해의 첫날에는 일년 동안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근신한다는 뜻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고서(古書)에는 설날을 신일(愼日) 또는 창도(愴刀)라고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정월의 처음인 상자(上子).상진(上辰).상오(上午).상해(上亥) 날에 모든 일을 기신(忌愼:조심하고 삼가함)하여 거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습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2.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
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3. 설날의 풍속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설날 차례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歲饌]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차례상,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를 놓는데,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고, 또 마른 것은 왼편에 젖은 것은 오른편에 놓으며, 나물류인 김치·청장(淸漿)·숙채(熟菜)는 가운데에 놓는다.

세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 (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네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 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데,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또 떡은 오른쪽에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2) 세배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3)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열양세시기(洌 陽歲時記)》원일(元日)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설빔]'이라 한다 하였다.

(4) 덕담

  덕담(德談)이란
잘 되기를 축하하는 말로서, 새해를 맞이하면 일가 친척들과 친구및 아랫사람을 만나면 해가 바뀐 인사를 교환하는데, 생자(생자).득관(득관).치부(치부).소원성취(소원성취)에 관한 말로 축원(축원)과 축하(축하)를 미리 함으로써, <그 해에는 그렇게 된다>는 영적(영적)인 힘의 작용을 믿는 데서 나왔다고 본다. 예컨데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과세 안녕 하셨습니까?",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아들 낳기를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 (長幼)의 차이에 따라 서로 축원과 축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원일 (元日)조에도 설날부터 사흘 동안 시내의 모든 남녀들이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 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예컨대 아들을 낳으시라든지, 승진하시라든지, 병환이 꼭 나으시라든지,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원일(元日)조에 연소한 친구를 만나면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하는 등의 말을 하는데, 서로 축하하는 이 말을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5) 문안비(問安婢:
정초에 새해 인사를 전하도록 보내던 계집종)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므로, 내방 부인들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였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교환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전하도록 보내던 계집종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주며, 또 약간의 세뱃돈도 주는것이 상례이다.

(6) 설그림[歲畵:
조선 때 새해를 축복하는 뜻으로 도화서(圖畵署)에서 그린 그림]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였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하는 것이며, 수성이란 장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 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가 귀신 잡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 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
임금의 內戚·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7) 복조리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나 섣달 그믐날 밤 자정(子正)이 지나, 대로 엮은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풍속이 있는데, 이 조리를 <복조리>라고 한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므로, <이 해의 복(福)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이같은 풍속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8) 야광귀(夜光鬼:양굉이) 쫓기

  정월 초하룻날 밤에
야광귀(夜光鬼)이라는 귀신이 인가(人家)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린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그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흉(凶)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 놓으며,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는데,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9) 청참(聽讖)

 
정월 초하루 새벽에 발닿는 대로 걷다가 사람 소리나 짐승 소리나 처음 들리는 소리로써 그해 한 해 동안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이며,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의 의미

설은 음력 1월 1일로 새해의 첫머리며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다.

해가 바뀌면서 상서롭고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빌고, 조상이나 어른 또는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에서 여러가지 행사와 놀이가 진행되며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고 조심한다는 뜻이다. 설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해에 통합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새해에 통합 되기에는 익숙하지 못한 단계로, <섧다>, <낯설다>라는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설빔          

  

설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새로 지은 옷을 입는데, 이옷을 '설빔' 또는 '설비음' 이라고 한다. 설빔은 남녀노소나 빈부귀천 없이 생활의 정도에 따라 준비하는데, 설빔을 마련하기 위하여 각 가정에서는 가을부터 옷감을 준비했다가 미리 정성껏 옷을 장만해 둔다. 특히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는데, 이것을 '까치저고리'라고 한다.

옛날에는 어른은 두루마기 도포를 비롯하여 버선, 대님, 행전까지 한 벌을 하며 바지저고리에는 새 솜을 두어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모르게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한 벌을 바련하여 색동옷으로 곱게 단장한다. 신은 어른은 징을 박은 가죽신, 또는 미투리를 신었고, 여자는 꽃신 또는 꽃미투리를 신기도 했는데, 중류 이하에서는 고운 짚신을 신는 것이 통례였다. 남자들은 대체로 흰 빛이고 상체도 흰 빛이지만, 어린 아이나 젊은 색시들은 여러가지 물감을 써서 물을 들여 옷을 지어 입었다. 이렇게 온 집안 식구가 설빔으로 갈아입은 다음 차례에 들어간다.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정초에 많이 행하는 개인 놀이의 하나이다. 선달부터 날리기도 하지만,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인 시기이다. 이것은 그해의 재앙이나 못된 액을 연에다 실어서 날려보낸다는 풍속에서 옛날부터 행하던 풍속이다.

 

 

윷놀이

 

한국의 민속 놀이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놀이는 윷놀이 있다. 남녀 노소의 구별 없이 다 함께 놀 수 있고 누구나 즐기고 있는 전승 놀이이다.

가을 일이 끝나고 동짓달로 접어들면서부터 농촌에서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가족끼리, 또는 친구끼리 모여 윷놀이를 하게 된다. 동짓달에서 섣달 정월을 지나 봄이 다가오면 윷놀이를 그만두는데 설을 전후하여 윷놀이가 가장 성행하게 된다.

또 동짓달에서 시작하여 정월의 긴 겨울밤을 보내기 위해서 민담, 수수께끼, 속담과 같은 이야기를 꽃피우다가 윷놀이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널뛰기

 

정초에 '널을 뛰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박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자들이 많이 하는 행동적이고 활발한 개인 놀이의 하나이다. 옛날에 집안에만 있었던 여자로서는 운동부족에서 오는 여러가지 현상을 막기 위한 좋은 놀이의 한 방법이다.

널뛰기를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 널뛰기 노래

묵은 해는 지나가고/ 새해 신원을 맞이했내/널뛰자 널뛰자//   새해 맞아 널뛰자(후렴).

앞집에 수캐야 네 왔느냐/ 뒷집에 순이야 너도 았느냐//  새해 맞아 널뛰자(후렴).

만복무량 소원성취/ 금년신수 좋을시구//  새해 맞아 널뛰자(후렴).

규중생장 우리 몸은/ 설 놀음이 널뛰기라//   새해 맞아 널뛰자(후렴).

널뛰기를 마친후에/ 떡국놀이를 가자세라//  새해 맞아 널뛰자(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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